철학 입문 50년 백종현 교수 "칸트사전은 안내판이자 약도"

입력 2019-05-16 07:45  

철학 입문 50년 백종현 교수 "칸트사전은 안내판이자 약도"
"번역어는 의미가 60%만 합치돼도 선택…번역엔 표준 없어"
"일본서 쓰는 '아프리오리' 굳이 사용할 이유 존재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50년 전인 1969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하며 철학이라는 깊고 넓은 학문에 입문한 백종현(69) 서울대 명예교수가 1년 6개월 동안 집필한 노작 '한국 칸트사전'을 출간했다.
백 교수는 출판사 아카넷을 통해 2002년 한국어 칸트전집 발간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등 많은 칸트 저작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는 16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칸트 단행본마다 핵심적인 주제를 모으면 표제어가 500∼600개는 되는데, 논문에서 다루기에는 작은 개념까지 균형을 맞춰 개념어를 설명했다"며 "3·1운동 100주년에 칸트사전을 출판해 기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칸트사전을 칸트 사상으로 이끄는 안내판이자 약도에 비유했다.
"칸트사전은 사실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은 아닙니다. 칸트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어요. 초학자나 심화 학습을 하는 연구자가 사전을 보면 칸트 사상의 얼개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 칸트사전은 독일어본보다 얇지만, 영어본보다는 두껍다"며 "세계적으로 분량이나 구성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아울러 백 교수는 1천116쪽, 5만5천원짜리 칸트사전이 출간되고, 이러한 서적을 구매할 독자가 있다는 점에서 국내 출판계가 어느 정도 체력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한국칸트학회와 한길사가 칸트전집을 출간하면서 기준점이 될 만한 책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또 중요한 개념어인 '아프리오리'(a priori)를 발음 그대로 쓰는 것도 반대했다.
'아프리오리'를 '선험적'(先驗的)으로 옮긴 백 교수는 "세대별로 언어 감각이 다르고 전승해야 할 부분도 있다"며 칸트학회가 추진하는 전집 출간 방식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사상을 해석하고 번역할 때는 표준이라는 것이 없다"며 "정본이나 표준판 같은 말은 학문을 하지 말자는 표현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예전부터 한국어로 철학을 하자는 운동을 벌였다"면서 "대학교 은사 중에는 일본어를 주로 배운 분이 많았는데, 첫 한글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저는 한국어 철학 개념을 정착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어 중에도 그대로 써도 되는 용어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꿔야 한다"며 "일본에서 '아프리오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굳이 일본을 따라서 하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번역어는 본래 의미에서 60% 정도만 합치돼도 채택하는 것이 옳다"며 "칸트 사상이 시험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번역어만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잠정적인 용어 통일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아프리오리' 논쟁보다 오히려 '통각' 같은 단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고심해서 전환해야 할 용어가 적지 않습니다. 학계가 이런 데에 힘을 쏟으면 좋겠어요. 결국에는 한국어로 철학을 논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향후 계획을 묻자 백 교수는 "공부에 끝이 어디 있느냐"면서 "부지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종일 나만 보고 있으면 실제의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처럼, 칸트뿐만 아니라 플라톤이나 헤겔도 공부해야 한다"며 칸트 연구에 더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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