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예림 인턴기자 = "이건 2만5천원. 솔직히 싸진 않죠? 공장에서 나온 게 아니라서 그래요. 여기 있는 제품은 거의 다 을지로 장인이랑 작업해서 만든 거예요. 을지로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주로 썼고요. 그러니까 이건 '메이드 인 을지로'인 거죠"
금빛으로 반짝이는 문진(文鎭·종이를 누를 때 쓰는 서예 도구)의 가격을 묻는 손님에게 청년 사업가 김현지(가명·34)씨가 자부심 넘치는 설명을 했다.
지난 11일 토요일, 서울시의 재개발 결정으로 한창 시끄러운 을지로 일대에서 공구 시연회와 공구·생활용품 판매 행사 '메이드 인 을지로'가 열렸다. 을지로 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소속 젊은 예술가와 을지로 일대 도매상가, 공구 업체 관계자들이 모여 을지로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을 시민들에게 전시, 판매하면서 을지로 보존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미술 기획가 홍지수씨는 동으로 만든 접시, 나무 도마, 스크래치 기법으로 꾸민 엽서, 사진집 등 판매 상품 대다수가 젊은 예술가와 을지로 기술 장인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행사에선 재개발로 인해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을지로 상가의 간판을 본떠서 만든 배지도 선을 보였다. 이 배지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개발에 나선 지역 브랜드 '메이드인(Made in) 청계천-을지로'를 달고 제작된 첫 시범 상품이다.
'메이드 인 청계천-을지로'는 '메이드 인 뉴욕', '메이드 인 런던'처럼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 개발한 지역 브랜드이다. 해당 지역에서 탄생한 제품에 붙여져 지역을 알리는 동시에 제품의 가치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브랜드 개발에 나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메이드 인 청계천-을지로'를 한국형 도심 제조업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연대 활동가이자 미술 기획가 홍씨는 "배지 이후에 이 브랜드를 달고 나올 다음 상품으로 어떤 것을 제작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몇 달 안에 결정해서 브랜드 등록과 함께 온·오프라인 상품 판매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메이드 인 청계천-을지로' 브랜드를 달고 선보일 상품에는 공업·예술·기술 등 여러 분야가 만나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을지로 지역의 정체성을 녹여낼 예정이다. 청년 예술가가 상품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장인이 을지로에서 구할 수 있는 기계 장비와 부품을 이용해 숙련된 기술로 제작에 나서는 방식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상품 판매를 통해 창출되는 수익금은 을지로 재개발 저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인 지원금과 단체의 공식 행사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도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부터 공구상이 밀집한 구역이 본격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하며 을지로 일대는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강제 철거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잠시 재개발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yellowyer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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