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tl; dr'
'너무 길어; 읽지 않음'(too long; didn't read)의 줄임말이다.
각종 정보가 쏟아지고 디지털 매체가 보편화하면서 사람들은 긴 글을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tl; dr' 버튼으로 500~700자 콘텐츠를 50∼75자로 요약해 보여주는 서비스를 하는 매체도 생겼다.
짧은 글과 사진으로 소통하는 소셜미디어 시대, 10대와 20대들이 만든 줄임말이 널리 쓰인다. 신조어를 모르면 '아재'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짧은 글을 선호하고 긴 글을 건너뛰고 요약하며 빠르게 훑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읽기 방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펴냄)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가 우리 뇌를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돌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진 자신의 뇌가 더는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리언 울프는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작 '책 읽는 뇌'에서 읽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오랜 진화 끝에 획득한 놀라운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어떤 종도 읽기 능력은 없다.
읽기는 기나긴 발달 과정을 통해 인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한 것이며, 그 능력을 얻음으로써 인류는 생각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지금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디지털 매체의 영향으로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망가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읽기 능력은 학습으로 얻은 성취이기에 언제든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 특히 뇌에 읽기 회로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읽기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하루 6~7시간씩 디지털 매체에 빠진 청소년의 뇌가 어떤 문제를 불러오는지 보여준다.
미국 한 대학교의 저명한 영어학과장은 저자에게 한때 인기 있던 헨리 제임스를 이제는 진행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오래되고 밀도가 높은 문학과 문장을 읽기 원하거나 읽을 수 있는 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러 문제점이 관찰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려운 문장 구조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읽기와 글쓰기 능력이 저하된다. 어려운 비판적, 분석적 사고를 견디는 '인지적 끈기'를 얻지 못할 위험도 크다.
미국인 한명이 하루에 읽는 단어 수가 웬만한 소설에 나오는 단어 수와 같다고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박 겉핥기식의 읽기는 지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가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정보가 계속 피상적인 수준에서 일종의 오락으로만 지각된다면 결국 우리는 표면에만 머무르게 되어 잠재적으로는 진정한 사고를 심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받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책을 읽자는 일방적인 주장만 하지 않는다.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로서 각종 연구 사례를 비롯해 역사와 문학, 과학을 넘나들며 독자들이,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그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인터넷으로 들어보지도 못한 세계들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지식의 내적 기반을 구축했으면 좋겠다"고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다.
매리언 울프는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라고 답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읽는 삶이라는 독특한 유산'을 물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의 마지막 줄에서 고향집과 같은 읽기로 돌아오라고 다시 한번 청한다.
"친애하는 좋은 독자 여러분, 천천히 서둘러, 집으로 오세요."
전병근 옮김. 36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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