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구청장이 사비 털어 건물 계약금 마련한 이유는

입력 2019-05-19 08:00   수정 2019-05-19 12:13

공무원·구청장이 사비 털어 건물 계약금 마련한 이유는
도시재생사업 위한 건물 매입 때 예산으로 선 집행 불가능
행정절차 밟는 사이 건물값 올라 사업 차질…제도개선 시급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행정절차를 밟는 사이에도 땅값이 올라 건물주 변심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난해 5월 부산 북구청 도시재생과 공무원 4명은 십시일반으로 5천만원을 모았다.
북구가 추진하는 '구포 이음 도시재생사업' 거점시설로 쓰일 132㎡ 규모 1층 건물(5억 1천만원 상당)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계약금을 내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에는 정명희 북구청장이 165㎡ 규모 5층 건물(16억5천만원 상당) 매입 계약금으로 1억원을 냈다.
구청장과 공무원은 건물 매입 계약을 끝낸 뒤 미리 냈던 계약금을 모두 돌려받았다.
예산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도시재생사업에 구청장과 공무원이 사비를 털어 건물 계약금을 마련하고 있다.
선뜻 이해가 안 가지만 사정은 이렇다.
도시재생사업을 할 때 지자체가 거점시설로 사용할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라 구의회 승인과 공유재산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행정절차는 보통 4∼6개월 정도 걸린다.
도시재생사업 예정지로 이미 사업 계획이 발표 나고 난 뒤라 행정절차를 밟는 사이에도 땅값은 큰 폭으로 뛰는 경우가 많다.
일부 건물주는 지자체가 행정절차를 마친 뒤 건물 계약을 하려는 시점에 마음을 바꿔 구두계약을 어기고 건물을 팔지 않겠다고 버티거나 가격을 더 쳐달라고 흥정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자체가 건물을 매입하지 못하면 또 다른 건물을 알아보고 행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재생사업이 지연되면 애써 확보한 국비마저 반납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행정 절차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 사업에 제동이 걸리게 되면 계약금을 날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산으로 계약금을 지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북구는 앞서 건물주 변심이나 행정 절차를 밟는 사이 수억 원이 뛴 건물 가격 때문에 몇 차례 건물을 매입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이에 고심 끝에 한 공무원 제안으로 의회에 구두 승인을 받은 뒤 공무원들이 돈을 모아 건물 계약금을 지불했다.
LH 토지은행 제도 등도 절차를 밟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개인이 계약금을 내고 건물주 변심을 막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는 게 북구 설명이다.
북구 관계자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걷어 계약금을 내고 가계약을 하지 않았으면 행정 절차를 밟는 사이 건물 가격이 더 올라 수억 원의 세금이 낭비되거나 사업이 늦춰질 수도 있었다"며 "만약에 사업이 무산되면 개인이 낸 계약금을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인 행정을 위해 돈을 걷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사비가 들어간 선례가 다른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고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아 건물 가격이 상승해 세금이 낭비되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북구는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에 도시재생 뉴딜 사업 추진 시 공유재산 심의절차를 감축하는 방안을 건의했지만, 장기적 개선과제라는 답이 돌아왔을 뿐 아직 법 개정 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북구가 건의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30조 개정안은 확정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에서 공유재산을 취득할 때는 구의회 승인 등 행정 절차를 생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명희 북구청장은 "제도적인 한계 때문에 공무원이 사비로라도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예산이 낭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관계기관이 머리를 맞대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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