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암시 동영상' 공개에 사퇴한 극우 부총리에 정국 '격랑'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오스트리아 우파-극우 연립정부가 출범 1년 반만에 붕괴하며 오스트리아 정국이 유럽의회 선거를 1주일 앞두고 격랑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 제1당인 우파 국민당을 이끄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18일 밤(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극우 자유당과의 연정을 파기하고, 조기총선을 치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이제 (자유당과의 연정은)충분하다"며 가능한 조속히 총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날짜를 잡아 줄 것을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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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츠 총리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정치적 후원을 받는 대신에 정부의 사업권을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은밀한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의 중심의 선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전격 사퇴한 뒤 이뤄진 것이다.
최근 들어 인종차별적 발언과 극단적인 극우 단체와의 연계 등으로 물의를 빚은 극우 자유당과 부쩍 거리를 둬 온 쿠르츠 총리는 이번 일로 더 이상 자유당과의 동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극우 성향의 자유당을 이끄는 슈트라헤 부총리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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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자리에서 동영상에 찍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멍청하고, 무책임한 실수였다"고 자책하면서도, 이번 일은 자신을 겨냥한 '정치적인 암살'이라고 항변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영상에서 이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듯한 모습이 담긴 것에 대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성에게)환심을 사려는 10대 소년처럼 행동했다"며 자신의 아내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정가는 슈트라헤 부총리가 2년 전 스페인의 이비사섬에서 한 여성과 대화하는 장면이 찍힌 은밀한 동영상이 전날 공개되며 발칵 뒤집혔다.
부총리가 되기 불과 몇 달 전에 촬영돼 슈피겔, 쥐트도이체자이퉁 등 독일 매체 두 곳에 실린 이 동영상에서 그는 러시아의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의 조카라고 스스로를 밝힌 여성에게 정치적·재정적인 후원을 받는 대신에 정부 사업권을 부풀려진 가격에 줄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
이 같은 동영상이 공개되자 야당은 즉각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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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은 동영상이 불법으로 촬영됐다며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으나, 슈트라헤 부총리는 전방위적인 비판에 결국 동영상 공개 하루 만에 사퇴 회견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만든 자유당은 줄곧 비주류에 머물렀으나,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했고, 제1당인 우파 국민당과 2017년 12월 연립정부를 구성해 유럽 최초로 내각에 참여하는 극우정당이 됐다.
자유당은 그러나 최근 당 외부 연결 단체인 극우 성향의 '정체성 운동' 대표가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 난사를 했던 브렌턴 태런트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게 드러나 도마 위에 올랐고, 슈트라헤 대표 역시 잦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슈트라헤 부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자신이 내려놓은 부총리직과 자유당 대표 자리는 노르베르트 호퍼 교통장관이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으나, 그의 이 같은 구상은 쿠르츠 총리의 조기총선 선언으로 무위에 그치게 됐다.
호퍼 장관은 2016년 1월 실시된 대선에 출마했으나, 전 녹색당 당수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현 대통령에 근소한 차이로 패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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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사태는 내주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을 노리며 유럽연합(EU)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유럽 내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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