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공산독재시절 낙태금지했다 반인륜적 재앙 초래

입력 2019-05-20 16:34  

루마니아 공산독재시절 낙태금지했다 반인륜적 재앙 초래
"앨라배마 낙태금지법은 루마니아보다 한 발 더 나간 것"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만약 국가가 낙태를 강제로 금지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최근 미 앨라배마주가 성폭행 피해로 인한 낙태도 금지하는 초강력 낙태금지법을 마련하면서 내년 미국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수-진보의 첨예한 대치점인 낙태가 다시 이슈화하고 있다.
물론 낙태 반대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조차 앨라배마 법은 너무 나간 것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으나 낙태 허용 또는 그 범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예상된다.
폐미니즘의 대두 속에 임신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보수진영에서는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보수계 판사 임명으로 연방대법원의 구성이 보수가 5-4로 우세해지면서 1973년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한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번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앨라배마 주의회가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키던 순간 주의회 밖에서는 반대자들이 붉은 예복 차림을 하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국가가 임신, 출산을 통제하는 반 이상향을 그린 마거릿 앳우드의 소설 '헨드메이즈 테일'(시녀 이야기)을 빗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앳우드의 소설을 인용할 필요 없이 지난 1960년대 루마니아가 국가의 낙태금지에 따른 재앙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포린폴리시(FP)는 60년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가 낙태를 금지함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면 낙태금지가 초래하는 끔찍한 반인륜적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번 앨라배마 법은 오히려 악명높은 당시 루마니아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966년 당시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낙태와 피임을 금지했다. 낙태를 시도하거니 이를 돕는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루마니아 여성 출산율이 1.9에서 3.7로 급등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루마니아 여성들이 당국의 금지를 회피하는 방안을 발견하면서 출산율이 다시 떨어졌다. 부유한 도시 여성들은 종종 의사들을 매수해 낙태하거나 혹은 독일로부터 피임 도구를 수입해 사용했다.
반면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계층에서는 낙태금지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등 인구증가가 불균형적으로 이뤄졌다. 앨라배마 낙태법 반대자들도 유사한 결과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여성들이 위험한 자가 낙태 방법을 은밀히 동원하면서 1989년까지 최소한 1만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1965~1989년 사이 루마니아 임산부들의 사망률이 급증했다.
많은 루마니아 여성들에게 성생활은 즐거운 삶의 일부가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다.
낙태금지의 부작용은 고아의 양산이라는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1989년 차우셰스쿠 공산 독재가 무너졌을 때 17만명의 아동이 비인간적인 환경의 보육원에 강제 수용돼 있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은폐된 채 영양실조와 신체적 학대 등 비인간적 처우를 받아왔고 일부는 쇠고랑에 묶여있기도 했다. 인구를 늘리는 데 신경을 썼으나 정작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앨라배마가 이번에 마련한 낙태금지법은 과거 루마니아의 낙태금지법을 능가하는 초강력 법으로 지적되고 있다.
루마니아 낙태금지조치는 원칙적으로 성폭행과 유전적 결함, 근친상간 등의 금지 예외 상황을 허용하고 있으나 앨라배마 법은 임산부의 건강에 중대한 위협이 있을 경우에만 예외적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임신의 모든 단계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앨라배마 낙태금지법 공동발의자인 테리 콜린스 주 하원의원은 자신의 법안 발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기 보수계 연방대법원 판사를 지명할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만약 대법원이 보수계의 기대대로 앞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게 되면 낙태에 관한 절차는 각주가 개별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루마니아의 포기된 아동들'의 저자인 하버드의대의 찰스 넬슨 교수(소아과)는 "(앨라배마와 같은) 낙태금지법의 장기적 결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면서 루마니아 보육원에 수용됐던 아동들의 경우 심각한 발달장애와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보육원 수용 아동들의 경우 뇌의 크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넬슨 교수는 앨라배마 법의 경우 "태아의 결함이 발견된 상황에서 임신을 종식할 대안이 없다면 주(州)가 어떤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곧 출산할 경우 주가 이들 아동과 그 가족들을 돌볼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1989년 루마니아 공산정권이 붕괴하면서 임시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 가운데 하나는 낙태금지법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루마니아는 보수적인 나라로 근래 정교회 등 종교계의 요구로 낙태금지요구가 다시 제기되고 있으나 차우셰스쿠 정권의 낙태금지에 따른 후유증이 너무 커 낙태금지가 다시 제도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yj378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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