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日제안 '중재위' 구성 응하지 않을듯…"사법절차 진행중 개입 부적절"
갈등 지속 상황서 6월 G20 계기 한일정상회담 개최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20일 한국 정부에 제3국 위원을 포함하는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중재위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정부는 오늘 오전 외교채널을 통해 일측으로부터 한일 청구권협정상 중재 회부를 요청하는 외교 공한을 접수했다"면서 "정부는 일측의 조치에 대해 제반 요소를 감안하여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요청한 '중재위' 구성은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것이다.
협정 3조는 협정과 관련한 양국 간 분쟁이 외교상 경로를 통해 풀리지 않을 경우, 제3국 인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게 돼 있다.
일본은 지난 1월 9일 청구권 협정상 '외교 협의'를 요청했지만,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자 2단계 조치에 나선 셈으로 이는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중재위가 실제로 가동될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청구권협정에 따르면 중재 요청이 상대방 국가에 접수된 뒤 30일 이내에 한국과 일본이 각 1명씩의 중재위원을 선임하고, 이후 다시 30일 이내에 제3국 중재위원 1명을 합의를 통해 지명하게 돼 있다.
그런데 한일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제3국 중재위원에 합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초 한국 정부가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이번 문제와 관련,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행정부가 나서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삼권 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구권협정은 어느 한 나라가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거나 제3국 중재위원에 합의하지 못하면 두 나라는 각각 중재위 역할을 할 제3국을 지명해 이들 나라를 통해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는 데다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을 제3국 결정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한국은 사법절차가 끝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기조"라며 "정부가 외교적 협의도 받지 않았는데 중재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성과 별개로 일본은 국내외적으로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한국에 '중재위' 구성을 계속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은 오는 22∼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 맞춰 외교장관회담을 여는 방안을 조율 중인데, 회담이 열린다면 일본은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은 작년 10월 말 한국 대법원이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제철(전 신일철주금), 후지코시 등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7개월째 출구 없는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배상에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 측은 지난 1일 법원에 압류 자산을 매각해달라는 '매각명령 신청'에 들어가 이르면 7월 이전에 실제 매각이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기업의 손실이 현실화하면 한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관세를 올리는 등의 보복 조치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간 대치가 이어지면서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의 정상회담도 개최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종문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지도자가 갈등 해소를 위해 결단을 내리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슈"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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