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살리기] ②환자안전 위협하는 '주폭'…"주취감경은 안돼"

입력 2019-05-22 06:00  

[응급환자 살리기] ②환자안전 위협하는 '주폭'…"주취감경은 안돼"
처벌 강화 이후 응급실에 변화 조짐…엄중 처벌로 경각심 줘야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설치 확대해 중증환자 치료와 구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응급실에 술 취해 오는 분들이요? 실제 위급한 건 10% 정도고 나머지는 그냥 취한 상태거든요. 근데 막 들어오시니까 (이분들 때문에) 더 급한 환자를 놓칠 수 있어 문제가 큽니다."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보라매병원) 이휘재 응급의학과 교수는 주취자 문제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주취자들이 난동, 폭언 등으로 의료진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중증환자의 치료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취자는 응급진료를 방해하고,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 간호사, 소방대원 등은 하나같이 주취자 문제에 혀를 내둘렀다. 주취자만 없어도 응급실 근무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보건복지부 집계 결과 응급실 내 폭행 등 진료 방해 행위의 67.6%(2017년 기준)는 주취자에 의해 발생한다. 지난해 전북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는 주취자가 의사 코뼈를 부러뜨리는 것도 모자라 "감옥에 갔다 와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응급의학회 설문을 보면 응급의료종사자 62.6%가 폭행을 경험했다. 또 39.7%는 근무하는 응급실에서 월 1회 이상 폭행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지난해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을 내놨다. 대책에는 응급실에 보안 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폭행범의 경우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대응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매년 응급의료기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활용해 응급실과 경찰 사이 핫라인(폴리스콜) 구축과 폐쇄회로(CC) TV 설치 등을 지원하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다치게 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응급실이 아닌 곳에서도 진료 중인 의료인을 때리면 3년 이상의 징역 등을 선고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의료기관 내 폭행의 경우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를 이유로 처벌을 감경하는 '주취감경'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는 게 의료계 의견이다.
주취자의 응급실 방문을 근본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데다 환자를 실제로 고소·고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주취자를 위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설치를 확대해 중증환자 응급진료와 구분 짓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중증환자와 주취자 모두 필요한 진료와 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와 함께 응급실 내 폭행이 의료진과 환자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준필 대한응급의학회 회장(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주취자의 응급실 방문을 무조건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최근 들어 응급실 내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응급실 폐쇄회로(CC) TV 설치에 따라 증거가 확보되고, 처벌 수준도 크게 강화됐다는 사실 등을 주취자에게 알리면 가벼운 소란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조 회장의 전언이다.
그러면서 "응급실 내 주취자 폭행 문제가 엄중히 처벌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며 "이와 동시에 24시간 경찰이 상주하면서 주취자 관리를 전담하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jan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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