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서 전격 발표…"동부 지역 친러 반군과의 전쟁 중단이 일차적 과제"
지난달 대선서 포로셴코 대통령 누르고 당선…親서방 노선 유지될 듯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20일(이하 현지시간)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수도 키예프의 의회 건물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고, 조국의 안녕과 국민의 복지를 챙기며,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고,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며, 세계에서 우크라이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선서했다.
젤렌스키는 뒤이은 취임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 지역(돈바스 지역) 주민들을 향해 "우리의 일차적 과제는 돈바스 지역의 전쟁을 중단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돈바스 지역에서 201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반군과 정부군 간 교전을 중단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는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기나 지지율을 잃을 준비가 돼 있다. 평화가 올 수만 있다면 동요 없이 대통령직을 버릴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어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것이 그다음 과제라면서 "크림과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땅이다"라고 강조했다.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와 친러시아 반군의 통제하에 있는 돈바스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영유권을 재확인하면서 잃어버린 영토들을 회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젤렌스키는 뒤이어 의회 해산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제8대 최고라다(의회)를 해산한다"면서 조기 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동시에 기존 내각에 총사퇴를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르면 조기 총선은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선언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한다.
젤렌스키는 남은 2개월의 임기 내에 의회가 의원 면책특권 최소, 부정축재 처벌 등의 시급한 법률을 채택해 줄 것을 주문했다.
동시에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국가안보국 국장, 검찰총장, 국방장관 등의 해임도 요청했다.
젤렌스키는 또 공무원들을 향해 "당신들의 사무실에 내 초상을 걸지 말고 자식들의 사진을 걸라"면서 "매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들(아이들)의 눈을 쳐다보라"고 조언했다.
젤렌스키는 의회 취임식에 이어 인근의 '마리인스키 궁전'으로 이동해 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외국 사절들을 영접한 뒤 곧바로 대통령 행정실로 이동해 업무에 착수했다.
앞서 그는 이날 아침 키예프 시내의 자택에서 나와 의회 건물까지 걸어서 이동하며 도중에 시민들과 셀피를 찍기도 하는 등 친근한 지도자 모습을 과시했다.
지지자들은 '젤렌스키',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날 안드레이 파루비 의회 의장의 사회로 진행된 취임식에는 의원들과 4명의 전임 대통령은 물론 발트3국·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헝가리 등의 대통령, 터키 부통령,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 등의 외국 사절도 참석했다.
젤렌스키는 지난달 21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73.22%를 득표해 24.45%를 얻은 페트로 포로셴코(53) 대통령을 누르고 압도적 승리를 차지했다.
유명 코미디언 출신으로 지난 2015년부터 방영된 인기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인공인 대통령 역을 맡아 '국민배우'로 부상한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과 염증에 기대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신화'를 썼다.
전문가들은 젤렌스키 집권기에도 전임 포로셴코 대통령 정부의 '탈러시아 친서방' 노선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젤렌스키도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등 친서방 견해를 밝혀왔다.
젤렌스키는 취임과 함께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를 선포하며 의회 장악에도 시동을 걸었다. 정례 총선은 10월로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대선 과정에서 젤렌스키가 설립한 정당 '국민의 종'이 제1당이 될 것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의회가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해산에 반발할 것으로 보여 신임 대통령과 의회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그동안 포로셴코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과 연정을 유지해온 '국민전선'은 지난 17일 연정 탈퇴를 선언하며 젤렌스키의 의회 해산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한 달로 규정된 새 연정 구성 협상 기간에는 의회를 해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물러나는 포로셴코 대통령은 이날 독일 신문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정계에 남아 있으면서 필요하면 신임 대통령에게 조언하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차기 대선에 참여할 가능성을 볼 것이다. 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재임 기간에 이룬 성과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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