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살리기] ④"응급상황엔 '명의' 없다…지역 넘어가선 안돼"

입력 2019-05-22 06:00  

[응급환자 살리기] ④"응급상황엔 '명의' 없다…지역 넘어가선 안돼"
홍은석 응급의학회 이사장 "'지역형 응급체계'로 빠르고 적절한 치료 중요"
"구급대원에 '병원 선택권' 보장 검토하고, 경찰 상주제도 확대해야"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응급환자는 지역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지역에서 예산 편성부터 운영, 평가까지 책임을 갖고 응급의료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병원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응급실은 하루에도 수백명씩 환자가 몰려든다. 감기로 열이 오른 환자부터 해외여행 이후 감염병 증세가 나타난 환자, 갑자기 발작을 보이며 의식을 잃은 환자, 중증외상으로 크게 다친 환자까지 다양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는 이송이 늦어져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하고,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필요한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은 종종 술에 취한 환자의 폭언·폭행과 맞서야 한다.
22일 홍은석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응급실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이사장은 "지역 응급의료체계는 지자체 스스로 병원, 의료진, 구급대원 등 지역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맞춤형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 평가하는 것"이라며 "개념이 추상적이지만 지역의 책임을 강화하는 체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응급의료 관련 예산을 지자체가 직접 편성한다"며 "어떤 자원을 어디에 쓸지는 중앙정부보다 현지 사정을 꿰고 있는 지역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평가지표를 공개하고 경쟁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홍 이사장이 생각하는 지역 응급의료체계 활성화 방안이다.
홍 이사장은 "예를 들어 울산은 대전보다 심뇌혈관환자 사망률, 심폐소생술 시행률 등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 등을 공개하고 이를 지자체 평가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끼리 경쟁을 시키면 지역별로 자신의 미흡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중증외상환자 역시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현재 권역외상센터 17개가 선정돼 있지만, 모든 외상환자를 커버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홍 이사장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치료하려면 권역외상센터 기능도 필요하겠지만 지역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며 "외상환자가 발생하면 치료 가능 병원이 어디인지, 해당 병원의 의료진이 부족하다면 연락망을 통해 파견이 가능한 전문의가 어디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세밀한 체계는 중앙에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환자 이송단계에서 구급대원의 활동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홍 이사장은 "구급대원들은 주로 환자가 자신의 상태나 병원까지의 거리 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병원 이송을 요구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며 "환자의 요구를 무시하기도 어렵고, 지역에 따라서는 의료기관의 편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환자는 대형병원이 아닌 지역 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고 자신의 상태가 중증인지 경증인지 판단도 잘 못 한다"며 "인근 병원이 할 수 있는 진료 유형별 정보를 홍보하고 해당 병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환자와 보호자의 병원 선택권을 일부 제한해 구급대원의 병원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응급실의 고질적 문제로는 주취자의 폭언·폭행을 꼽았다.
홍 이사장은 "외상을 입거나 의식저하, 이상행동 등 치료가 필요한 주취자 가운데는 치료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의사는 임의로 치료를 강제하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 줄 수도 없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취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 동행한 친구나 동료들은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폭언을 내뱉고 폭력을 행사할 때가 많다"며 "보안요원이 있지만, 함부로 제압했다가 폭행죄로 고소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보안요원이 배치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지방의 응급실이다.
홍 이사장은 "적어도 응급의료기관이라면 보안 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며 "단순 주취자들은 인력이 잘 갖춰진 대학병원보다 소규모 응급실을 찾아가거나 이송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응급실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관련 법률이 개정되는 등 사회의 전반적인 경각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보안요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찰 연계를 강화하고 의료인력 역시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홍 이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대부분 응급의료기관에는 경찰에 바로 연결되는 핫라인(폴리스콜)이 설치돼 있지만, 사용빈도는 높지 않다"며 "무장강도 수준의 긴급상황이 아니면 주취자 난동은 경미한 사건으로 치부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공공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응급실 경찰 상주제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며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인력들 역시 폭력 예방과 대처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에 대해 홍 이사장은 "과밀화는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대다수 병원에서 환자가 무한 대기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일부 병원에서는 입원 대기 환자들이 며칠씩 병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며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것을 막기보다는 전반적인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통해 국민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상황에서는 명의가 없다"며 "환자가 빠르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한 체계가 갖춰야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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