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해외에서도 '기생충'에 공감해줘서 감사"

입력 2019-05-23 11:21   수정 2019-05-23 21:26

봉준호 "해외에서도 '기생충'에 공감해줘서 감사"
"영화가 사회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칸[프랑스]=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외국인들이 다들 자국 이야기래요.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이야기니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마냥 기쁘지만은 않네요. (웃음)"
22일(현지시간) 칸 팔레 드 페스티발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영화 공개 후 쏟아지는 호평과 찬사에 약간 상기된 듯한 모습이었다.
전날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의 '기생충' 공식 상영 후 8분이 넘는 기립박수가 이어지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기립박수가 끝나지 않자 봉 감독이 "집에 갑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칸에서의 기립박수 멋지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쑥스럽거든요. 1분이 1년 같더라고요. 배고프기도 했고요. 관객이 이제 돌아가서 영화에 대해 각자 이야기하고 음미하길 바랐어요. 공식 상영 때 틸다 스윈턴이 저랑 강호 형(송강호) 뒤에 앉았는데, 엔딩 크레디트 올라갈 때 우리 두 사람 어깨를 꽉 잡으며 기뻐하더라고요. 정말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바쁜 와중에 와서 응원해줘서 고마웠죠."

봉준호가 말하는 '기생충'…송강호가 말하는 봉준호 / 연합뉴스 (Yonhapnews)


올해 제7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한국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노리는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을 통해 빈부격차라는 보편적인 현상을 이야기한다. 다만 그 방식은 한국적이다.
봉 감독은 자신이 "할리우드 관습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저는 '살인의 추억'(2003)부터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피하려고 했거든요. 그것이 제 동력이자 호흡 방식인 것 같아요. '기생충'도 마찬가지죠. '봉준호 영화가 장르를 구분하기 힘들고 본인이 하나의 장르가 돼버렸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찬사입니다."


'기생충'에서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 공간이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진다. 봉 감독은 "사적인 공간을 현미경처럼 파고들어 보여주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기택(송강호) 가족은 '내가 부자였으면 더 착했을 것'이라는 대사를 합니다. 이들은 명분을 가지고 싸워나가는 부류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스며들어 살아볼까 하는 사람들이에요. 술자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겠죠. 부잣집 박 사장(이선균)도 냄새에 대해 무척 공격적인 대사를 하는데, 이 역시 공식 석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평소 타인으로부터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듣게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는 "계층에 따라 차지하는 공간의 면적이 다르다"며 "그 대비만으로도 계급·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느껴진다"고 부연했다.
영화는 빈부격차라는 사회문제를 꼬집지만, 봉 감독은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제 안에는 불안이나 공포의 감정이 많아요. 이걸 영화로 표현하면 서스펜스가 되겠죠. 그 불안이나 공포의 근원은 타인, 집단, 사회,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제 영화에 사회나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만약 영화가 사회를 바꾸려다 지친 사람을 위로하고 그 사람이 힘을 낸다면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긴 하겠죠. 그러나 영화를 통한 선전·선동은 옳지 않아요. 영화 자체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고, 저는 그것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기생충'의 시작은 봉 감독이 '설국열차' 후반 작업에 몰두하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첫 번째 칸과 꼬리 칸으로 계급 차이를 설명했다.
"그 당시 제가 이런 주제의식 속에 휩싸여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찾지는 않아요. 2013년 '기생충'을 처음 구상할 때의 가제는 데칼코마니였죠. 그때는 두 가족을 완전히 대등하게 접근했는데, 기택 가족의 관점을 따라가게 되면서 '기생충'으로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봉 감독은 "영화라는 케이크 위에 딸기를 얹는 것은 배우들"이라며 영화에서의 배우 역할을 강조했다.
"배우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섬세한 유리그릇 같은 사람들이에요. 항상 그들을 편하게 해줘야 해요. 긴장한 상태에서는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저는 카메라와 배우의 관계를 맺어줄 뿐입니다. 어떻게 움직이라는 큰 틀만 제시할 뿐 나머지는 배우가 알아서 하는 것이죠."
올해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을 것 같다"며 "스토리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고 관객을 설득시키는 송강호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고 단언했다.


dy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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