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 통화내용' 주미대사관 직원 다수 열람 의혹…대사·장관 책임론도
한미 외교소통에 영향 가능성…"신뢰를 깨는 문제 될 수 있어"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외교부가 '구겨진 태극기' 등 실수를 연발하고 갑질 등으로 잇따라 대사가 소환되더니 급기야 초대형 보안사고까지 터지면서 기강해이가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잇단 잡음으로 몸살을 앓던 외교부는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을 유출한 장본인이 주미대사관 간부급 직원 K씨로 밝혀지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다.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3급 비밀이다.
K씨는 외교관 생활이 2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해당 내용이 유출됐을 경우의 파장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이를 야당 국회의원에게 넘겼다는 데서 외교부 직원들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외교부는 주미대사관에서 현재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K씨뿐만 아니라 주미대사관의 보안과 관련한 시스템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유출 내용이 조윤제 주미대사만 볼 수 있도록 분류돼 있었는데, K씨를 비롯한 다수의 직원이 이를 돌려봤다는 의혹도 외교부 안팎에서는 흘러나온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징계는 K씨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조윤제 대사는 물론 강경화 장관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다.
한 외교관은 24일 "감찰 결과가 나와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K씨에게 고교 선배인 강효상 의원의 압박이 있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K씨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조현 외교부 전 1차관이 전날 이임식에서 "최근 외교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왔다"면서 "자책감이 든다"는 소회를 남기고 떠난 것도 최근 외교부에서 연이어 터진 사건들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부는 지난 4월 주최한 한-스페인 차관급 전략대화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놓고, 영문 보도자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국가 이름을 잘못 표기하는 등 실수가 잇따랐다.
또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와 도경환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이달 초 직원에 대한 갑질과 김영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잇따라 소환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 유출사건이 미국과 외교적 소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 간 통화내용까지 유출되는 상황에서 한미 외교 당국자 간에 허심탄회한 협의가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가 전날 "이 사안은 한미 간 신뢰를 깨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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