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시병행' 재거론…6·12 1주년 앞두고 北美 접점모색할까

입력 2019-05-25 14:13  

美 '동시병행' 재거론…6·12 1주년 앞두고 北美 접점모색할까
'단계적해법'-'일괄타결' 평행선 속 美 '동시적·병행적 진전' 언급
내달 G20 정상회의·트럼프 방한 등 계기 북핵 외교에 '시선집중'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북미 정상 간의 사상 첫 만남이 이뤄진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6월12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미관계는 역사적 회담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회담에서 '북미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하며 북미 관계를 새로운 출발선에 세웠지만 2월 말 하노이에서의 2차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이후 양측은 좀처럼 대화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일 북미가 주고받은 메시지는 그런 북미관계의 현 주소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문을 연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이상 조미(북미)대화는 언제 가도 재개될 수 없으며 핵 문제 해결 전망도 그만큼 요원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불신'과 '적대행위'가 가중된다면 강경대응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발신했다.
이런 북측 메시지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협상에 여전히 열려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두 정상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미 관계 전환,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에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말해온 대로 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실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서로 '판'을 깨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의 변화보다는 상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미국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억류,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 가능성은 북미관계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24일 "미국은 목표(비핵화·관계개선·평화체제 등)들을 향해 '동시적이고 병행적으로'(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진전을 이루기 위해 북한과 건설적인 논의에 관여할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고 밝힌 대목은 눈길을 모은다.
북미 실무협상에 참여해온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월말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영변과 그 외부에 존재하는 북한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 → '핵 관련 포괄적 신고 및 해외 전문가들의 사찰·검증' →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 미사일, 발사대 및 다른 WMD(대량파괴무기)에 대한 제거 및 파괴' 등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며 '동시적·병행적 기조'를 천명한 바 있다.
이후 지난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은 점진적 비핵화에 대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며 '빅딜론'으로 회귀하는 듯했기에 '동시적·병행적'이라는 표현을 재거론한 배경에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북미간 접점 찾기를 모색할 여지를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사실 양측의 비핵화 접근법 사이에는 작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미국은 최종단계 비핵화의 요소를 확정하고, 거기까지 가는 로드맵을 먼저 합의한 뒤 구체적인 조치는 동시·병행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합의의 이행은 물론, 합의 자체도 몇개로 쪼개서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차이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미측이 '동시적·병행적 진전'을 다시 거론한 것은 일괄타결에 입각한 '선 비핵화-후 보상'의 비핵화 방식으로 일반에 알려진 리비아식 해법에 대한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그에 맞춰서 상응조치를 동시·병행적으로 취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북미간 타협점 찾기의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앞으로 다가올 정상외교 기회 등을 활용해 북미간 입장 차이를 좁히는 것은 한국 외교의 중요한 숙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다음 달에는 북미 정상회담 1주년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본 오사카(大阪)에서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다. 북핵 당사국들 간에 상호 입장차를 좁히고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물밑 외교전이 또 다시 달아오를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을 남북대화의 마중물 삼아 '포괄적 합의의 단계적 이행'에 기반한 북미협상 중재방안을 북한과 미국이 수용토록 하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25일 "북한은 하노이 회담 이후 중재 역할을 해온 한국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고, 미국 역시 어떤 새로운 타협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G20 정상회의(6월 28∼29일·일본 오사카) 등 새로운 (대화의) 판이 열리는 만큼, 우리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인 중재안과 타협안을 만들어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관심도가 예전같지 않은 만큼, 예전보다는 좀 더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미국-이란 간의 갈등과 미중 간 무역분쟁 등 트럼프 행정부의 두 외교 난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는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국제 정세를 주시해가며 새로운 판을 짜야 할 때라는 지적인 셈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란, 미중 문제 때문에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고,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화요청에 계속 묵묵부답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강박적인 대북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한 호흡 쉬어가는 여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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