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 합병 제안…르노 이사회 "관심 갖고 검토" 화답
양사 통합생산량 870만대·기업가치 43조원…닛산 등 합하면 1위 등극
노조 반발 등 걸림돌 돌출 가능성도…FCA CEO "합병에 1년이상 걸릴 수도"
(서울·로마=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미국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의 르노자동차가 합병을 추진한다.
로이터·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피아트크라이슬러는 27일 르노에 합병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FCA는 합병된 기업에 대해 FCA가 50%, 르노가 50% 지분을 소유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는 네덜란드 소재 지주회사를 통해 합병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FCA 주주들에게 25억유로의 특별배당금을 지급하고 나서 양사가 통합 법인의 새 주식 지분을 50%씩 소유하는 방식이다.
새 법인은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
르노도 이날 오전 프랑스 파리 인근의 본사에서 이사회를 연 뒤 성명을 내고 피아트의 제안을 관심을 갖고 검토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르노 이사회는 성명에서 "우리는 FCA의 제안 조항을 면밀히 살펴본 끝에, FCA가 제안한 사업 제휴의 기회를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사회는 "FCA와의 합병은 르노의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르노와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 미쓰비시 사이의 연합에 추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르노의 지분 15%를 보유한 프랑스 정부 관계자 역시 FCA의 합병 제안에 호의적이라고 밝혀, 르노와 FCA의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프랑스 정부의 대변인은 FCA와 르노의 합병 구상에 우호적이라면서, 이번 합병으로 인한 산업적 측면과 근로자들의 노동 조건 등 합병 조건들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랑스 정부 관료는 AP통신에 프랑스는 현재의 르노-닛산-미쓰비시의 3사 연합의 틀 내에서의 합병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양사 간 경영 통합 논의는 세계 자동차 업계가 경기 둔화에 따른 판매 부진, 차량공유·전기차·자율주행 등 산업 격변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최근 급물살을 탔다.
피아트와 르노는 합병을 통해 투자 공유, 비용 절감 등 경영 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주요 지역 시장과 기술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서 연간 50억유로(약 6조6천억원) 이상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사의 시장 평가가치는 지난 24일 기준으로 326억 유로(약 43조3천억원)다.
피아트는 "폭넓고 상호보완적인 브랜드 포트폴리오로 고급차부터 대중차에 이르기까지 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프 브랜드와 함께 알파 로메오와 마세라티 등 고급차 브랜드까지 아우르고 있는 FCA는 픽업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앞세워 북미와 중남미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면, 르노의 경우 유럽이 주력 시장이지만, 일본 자동차 닛산과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해 피아트가 고전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피아트의 경우 향후 자동차 산업의 주축으로 인식되는 전기차 개발에 있어 후발 주자로 꼽히고, 배출가스 기준을 준수하는 데에도 고전하고 있다.
그러나, 르노는 전기차 분야의 선도 업체인데다, 연료 효율성 측면에도 강점을 지니고 있어 두 회사의 상보 보완적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세계 3위 규모의 새로운 자동차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지난해 피아트와 르노는 합쳐서 자동차 870만대를 생산했다. 이는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일본 도요타가 각각 1천83만대, 1천59만대 판매한 것보다는 적지만 미국 제너럴모터스(GM)보다는 많다.
여기에 르노의 현재 제휴 업체인 닛산과 미쓰비시의 생산량까지 더해지면 피아트와 르노의 합병 회사의 연간 생산량은 1천500만대를 넘어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작사가 탄생하게 된다고 피아트 측은 설명했다.
FCA와 르노의 합병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양사의 주가가 나란히 치솟아, 이번 합병에 쏠린 시장의 기대감을 보여줬다.
FCA의 주가는 이날 밀라노 주식시장에서 한때 19%까지 급등했고, 르노는 파리 주식 시장에서 17%까지 점프했다.
하지만, FCA와 르노의 합병이 기대처럼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이번 합병은 르노와 지난 20년간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닛산에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되는 만큼, 닛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차 사장은 이날 일본 후지TV에 "연합체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 교환에 언제나 열려 있다"고만 말해, FCA와 르노의 합병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르노·닛산 동맹은 지난해 카를로스 곤 전 회장 체포로 흔들렸다가 최근 경영진을 재정비하고 나서 안정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일자리 삭감을 우려한 정치인들과 노조가 합병에 반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FCA는 합병에 따른 공장 폐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자리 감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두 회사의 합병 추진 소식에 "피아트가 성장할 수 있다면, 합병은 이탈리아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면서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합병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소지도 있다.
살비니가 이끄는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지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가 합병 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맨리 FCA 최고경영자(CEO)도 합병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이런 난관을 의식한 듯, FCA 임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합병이 종결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FCA와 르노의 합병 논의는 수 주 전부터 시작됐으며, 프랑스 정부는 지난 주 이에 대한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CA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 방식으로 회사를 회생시킨 세르지오 마르키온네 CEO가 작년 7월 갑자기 타계한 뒤 본격적인 합병 상대 찾기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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