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작가' 서도호가 문화재청에 장문 편지를 보낸 이유

입력 2019-05-28 06:00   수정 2019-05-28 09:03

'집의 작가' 서도호가 문화재청에 장문 편지를 보낸 이유
고종 침전 배경으로 한 '함녕전 프로젝트' 다큐 상영회 열려
"고종 보료 시카고필드뮤지엄서 소장…언젠가는 현장서 퍼포먼스 재연하고파"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은 고종이 1907년 대한제국 황제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난 뒤 1919년 승하 전까지 머문 침전이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문화재청 주최 '덕수궁 프로젝트'에 참가한 현대미술가 서도호가 작업 무대로 점찍은 곳도 함녕전이었다. 서도호는 어릴 적 살았던 성북동 한옥을 비롯한 다양한 집을 해석한 작업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로젝트를 제안받기 전 1900년대 외국인들이 바라본 대한제국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고종에 관심을 갖게 됐고, (프로젝트를 통해) 고종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함녕전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당시 함녕전을 봉사자 수백 명과 함께 깨끗하게 청소하고, 고증을 통한 재현에 나섰다. 그러나 청소를 모두 마친 뒤에도 뚜렷한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가는 명성황후(1851∼1895)와 엄비(1854∼1911)를 차례로 잃은 고종 침전에 '늘 보료(두툼한 요) 3채를 깔았다'는 당시 상궁(삼축당 김씨) 증언을 접한다.
'왜 보료 3채인가'라는 물음에서 서도호의 '함녕전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작가는 고종을 오늘날로 불러오기 위해 정영두 안무가와 협업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함녕전: 황제의 침실'은 이러한 '함녕전 프로젝트' 전체 과정을 담은 70분짜리 영상이다.
27일 CJ문화재단에 따르면 24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함녕전: 황제의 침실' 특별상영회가 열렸다. 행사 후에는 서도호 작가와 정영두 안무가,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참석한 작가와의 대화도 진행됐다.
서도호는 "오래지 않은 근대임에도 자료가 많지 않아 왕 침실 하나 재현하기 쉽지 않았다"라면서 "이 상황은 대한제국이라는 한 국가와 그 시대 전체의 비극으로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서도호는 작업 도중 문화재청에 긴 편지를 쓰기도 했다. 퍼포먼스에서 고종 역할을 한 정영두가 고종 심경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함녕전에서 하룻밤을 청하는 것을 허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함녕전 프로젝트'나 이 다큐멘터리가 고종을 영웅화하려는 건 아닙니다. 보료 세 채를 깐 이유는 실제로 고종밖에 모르죠. 역사 기록은 불완전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제3의 내러티브가 탄생합니다."
서도호는 함녕전 보료의 고증 과정에서 고종 황실이 시카고박람회에 보낸 보료가 현재 시카고필드뮤지엄에 소장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작가는 "2012년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시카고필드뮤지엄에서 '함녕전 프로젝트' 퍼포먼스를 재연하고 싶다"라면서 "그러한 의미에서 이 프로젝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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