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당시 인민해방군 사령관 7명 '계엄령 반대' 연대서명"

입력 2019-05-29 17:02  

"톈안먼 당시 인민해방군 사령관 7명 '계엄령 반대' 연대서명"
軍 기자였던 장린, NYT 인터뷰서 당시 상황 증언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30년 전인 1989년 6월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일부 인민해방군 장교들이 시위대 유혈진압을 막으려 연대 서명까지 하며 계엄령을 반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직 인민해방군 중위이자 기관지 기자였던 장린(66)은 NYT와 인터뷰에서 당시 일부 장교들이 시위대 무력 진압을 피하기 위해 했던 노력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7명의 군사령관들은 계엄령에 반대하는 서한에 서명한 후 이를 군 관리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장린은 "'인민해방군은 인민의 군대다. 시내로 진입해서도, 민간인에게 발포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간결한 메시지였다"고 서한의 내용을 공개했다.
사령관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어서 전하고 싶었던 장린은 곧바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편집장에게 전화해 서한의 내용을 불러줬다.
그러나 서명에 참여한 장성 중 한 명이 공개를 목적으로 쓴 서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이 내용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위험을 무릅쓴 장교들의 요청에도 중국 정부는 무력 진압을 강행했고, 계엄군은 6월 3일 톈안먼 광장에 진입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군의 무력 진압이 시작된 후 장린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자전거를 타고 광장으로 향했다.
군인들은 사복을 입은 그녀를 시위대로 오인해 진압봉으로 머리를 내려쳤지만, 장린은 "난 오늘 군의 일원이 아니고 평범한 시민"이라고 되뇌며 끝내 군인 신분을 숨겼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시위대와 외신 기자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장린은 수많은 이들이 숨지거나 다친 채 실려 오는 모습을 보고 "마치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견딜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장린은 톈안먼 사태 이후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개인 회고록 탓에 구금되기도 했다. 1996년 전역 후 조용한 삶을 살면서 톈안먼 사태 당시 보고 겪은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했다.
30년 만에 입을 연 장린은 NYT에 "고통이 나를 30년간 갉아먹었다"며 "당시 사태에 관여한 사람들은 아는 일을 모두 증언해야 한다. 그것이 죽은 자들과 생존자들, 그리고 미래의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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