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콜로라도대 연구진, M.바케 지방산 작용 동물실험서 확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은 어릴 때 병원성 미생물에 많이 노출돼야 면역체계가 강해져 알레르기, 천식 등 질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30년 전에 발표된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항염증 효능의 박테리아 지질(fat)이 미국 콜로라도대학 볼더 캠퍼스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학명이 '마이코박테리움 바케(Mycobacterium vaccae)'인 이 비병원성 균주는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지만, 소의 피부병소 등에서 주로 발견된다.
특히 이 박테리아의 지질(지방산)은 동물실험에서 스트레스 장애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보여 주목된다. 미생물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백신' 개발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이 높다.
이 대학의 크리스토퍼 로우리 통합생리학과 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최근 저널 '사이코파머콜러지(Psychopharmacology)'에 발표했다.
29일(현지시간) 온라인(바로가기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5/uoca-hfh052819.php])에 공개된 연구 개요에 따르면 '위생 가설'은, 영국 세인트 조지 런던대의 데이비드 스트래천 교수가 1989년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많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이론이 다듬어지면서 새로운 사실이 몇 가지 추가됐다. 아동기에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건 병원성 세균이 아니라 토양 등 자연계에 서식하는 흔한 박테리아이며, 이렇게 증강된 면역기능이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수석저자인 로우리 교수는 "방어 효과를 내는 '특별한 액체(sauce)'가 이 박테리아 안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이번에 찾은 지질은 그 '특별한 액체'의 주요 성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M.바케에서 발견된 지질은 불포화 지방산의 일종인 '10(Z) 헥사데센산'이다. 헥사데센산은 전체 지방산의 20%를 점유하며 대구 간, 정어리, 고래 등의 기름에 많다.
연구팀은, 외부 자극이 가해졌을 때 이 지방산과 면역 대식세포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술로 관찰했다.
이 지방산은 세포 안에서 자물쇠를 여는 열쇠 같았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페록시솜 증식체 활성화 수용체(PPAR)'와 결합해 염증을 일으키는 일군의 핵심 분자 경로를 차단했다. 그래서 이 지방산을 투여한 세포는 외부 자극이 가해져도 염증이 잘 생기지 않았다.
로우리 교수는 "인간과 공진화한 이 박테리아는 비장의 한 수를 갖고 있었다"면서 "면역세포에 포착되면 헥사데센산을 분비해 PPAR의 발을 묶음으로써 염증 반응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우리 교수는 오래전부터 '스트레스 백신' 개발의 비전을 갖고 M.바케를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이로운 박테리아에 노출되는 것과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보고서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2017년에는, 생쥐에 스트레스가 되는 어떤 일을 앞두고 미리 M.바케 박테리아를 생쥐에 투여하면 PTSD나 스트레스성 장염 등을 막을 수 있고, 스트레스 재발 시 불안해하는 행동도 줄어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로우리 교수는 "토양에는 이런 박테리아가 수백만 종 더 있다"면서 "박테리아가 진화 과정에서 개발한, 인간의 건강에 유익한 메커니즘은 이제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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