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지역경제] '유통 간소화ㆍ안전한 먹거리' 전북 로컬푸드 '신바람'

입력 2019-06-02 08:00  

[통통 지역경제] '유통 간소화ㆍ안전한 먹거리' 전북 로컬푸드 '신바람'
생산자·소비자 상생…전북 37개 매장서 올해 연매출 1천억 넘을듯
소득·일자리·환경 등에 긍정적 효과…"다단계 유통 악순환 끊는 시발점"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도심의 이마트나 하나로마트 같은 대형마트도 아닌 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농산물 직매장에서 하루 1억 원어치를 판 것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2012년 전북에서 처음 문을 연 완주군 용진면 로컬푸드(Local Food) 직매장의 첫해 반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당시 용진농협 이중진 경제상무.
그는 "물건을 내는 농민이나 판매를 담당한 농협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도심 아파트 단지 주변 대형마트를 마다하고 승용차로 30∼40분을 달려 시골의 작은 매장들을 찾는 발길이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꽉 찼다"면서 "'누가 기름값을 들여 일부러 시골까지 오겠는가' 했던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농민이 아침에 내놓은 신선한 농축산물을 저렴하게 저녁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짧은 기간에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용진면에서 시작된 로컬푸드 직매장은 어느덧 전주시·익산시·군산시 등지로 번져 총 37개로 늘었다.
살 것이라야 채소, 축산물, 과일, 가공식품이 전부인데도 완주군의 12개 직매장과 그에 딸린 4개 농가 레스토랑의 지난해 매출액은 600억원을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도내 37개 직매장의 작년 합계 매출액도 951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1천억원을 웃돌 것이 확실시된다.
농민 수입도 2배로 늘면서 첫 개점 당시 400여개에 불과했던 참여 농가는 올해 2천여 농가로 5배가량 증가했다.
도내 전체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비교적 로컬푸드 사업이 활성화한 완주지역 농민은 직매장 납품을 통해 매달 평균 1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벼 재배나 민물 양식 등 주 수입원이 있는 농민에게는 짭짤한 부수입이 더해진 것이다.

◇ 성공비결은 유통 간소화·안전성
로컬푸드 직매장의 성공비결은 복잡한 유통과정을 간소화해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도와 안전성이 높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통상 농산물의 유통체계는 농민∼산지 수집상∼도매시장 경매∼중간 도매상∼소매상을 거쳐야 비로소 소비자에 도달하는 다단계 시스템이다.
국내 농산물의 평균 유통비용이 소비자 구매액의 40% 안팎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배추가 포기당 1천원이라면 이 중 400원이 유통과정에서 고스란히 사라지는 셈이다.



농가가 영세하고 조직화·집단화가 안 돼 있는 탓에 도·소매상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손해 보는 구조다.
로컬푸드 직매장들은 이 같은 비상식적인 유통과정에 주목했고, 유통단계를 대폭 줄였다.
농민은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수박을 자신의 차에 실은 뒤 이 직매장에 갖다 놓는다. 그게 유통과정의 전부다. 판매를 위해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운송비 부담도 덜고 판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유통의 고속도로'를 달린 덕에 직매장 농산물의 신선도가 높고 판매 가격도 20%가량 저렴하다.
농민(생산자)은 유통비용을 줄여 이익을 늘리고 도시민(소비자)은 신선한 농산물을 그만큼 싸게 살 수 있게 됨으로써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상추, 고추, 딸기, 배추, 돼지고기 등에 붙은 생산자와 재배 일자 표기 등은 얼굴도 모르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 구축'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밥상에 오르곤 하는 국적 불명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없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직매장이 농산물의 출하 일자를 조작, 유통기한을 늘려 판매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당일 판매하지 못한 상품을 다음날 할인 판매하면서 이런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는 '꼼수'도 부렸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약을 허용 기준 이상 뿌리기도 했다.
일부 소비자는 "딸기에 곰팡이가 피고 안개꽃은 시들했다"고 항의하는 사례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직매장은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정했다. 일부 농산물은 특성을 고려해 유통기한을 최대 3일로 정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시일이 지난 상품을 값싼 가격에 파는 것이 소득(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신선도를 생명으로 하는 로컬푸드 원칙에는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인증제도 도입했다.
농산물·토양·농업용수 등을 채취해 잔류 농약 등을 주기적으로 검사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해 소비자와 신뢰를 지켜나갔다.



◇ 소득·일자리 늘고 환경오염 줄여
로컬푸드 직매장은 마땅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밭떼기' 식으로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던 농민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가져다줬다.
직매장들은 판매액의 15% 안팎인 운영비(근로자 임금과 시설 재투자 등)를 제외하고 판매액을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려줬다.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했다.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로컬푸드 직매장 1곳당 5명 안팎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또 몇몇 직매장이 직영하는 로컬푸드 레스토랑에도 3명가량씩 일한다.
현재 37개인 직매장에 더해 내년까지 3∼4개 더 문을 열게 될 것으로 보여 시골 지역 청·장년 일자리 역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직거래는 농산물 이동 거리도 대폭 줄였다.
수집상이나 도매상 등 보통 4∼5단계를 거쳐야 하는 중간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전북 농산물이 수집상을 거쳐 서울 농수산물 시장에 수집됐다가 다시 전북으로 내려오는 비효율적인 유통시스템의 개선은 수백 ㎞에 달하는 불필요한 이동 거리를 없앴다.
경작지에서 직매장으로 곧장 출하하면서 운송비용 절감은 물론 이산화탄소 저감 등 환경오염을 줄이는 부가적인 혜택도 안겨줬다.
또 이 같은 물리적인 이동 거리 단축은 생산자-소비자 간의 심리적인 거리도 줄여 지역 농산물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수입 농산물에 포위당한 국내 농산물이 출구를 찾는 희망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직매장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떨어지고 연중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나 품목의 제한 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 때문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는 농협이 관내 농가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파악한 뒤 파종 때부터 품목과 양, 시기를 조절해 가격 폭등이나 폭락을 사전에 차단하고 다양한 품목의 출하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영모 전북연구원 산업경제 연구부장은 "로컬푸드는 지역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소박한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적·환경적·건강상으로 지속 가능성이 높고 중소농의 안정적인 농업 소득 확보를 위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농협이 농산물 유통 개선을 위해 해마다 수조 원씩 쏟아붓고 있지만, 대부분이 풍작이면 갈아엎어 보상하고 흉작이면 곧장 수입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치는 것을 고려하면 로컬푸드 직매장은 계속되는 유통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시발점이기도 하다"고 황 부장은 덧붙였다.
ich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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