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미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의 정적 이름을 딴 구축함을 '시야에서 가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계로부터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를 방문해 강습상륙함 와스프에서 해군 장병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같은 기지에 수리차 정박 중인 구축함 '존 매케인'이 대통령의 눈에 띄거나 같은 사진 속에 나타나지 않도록 구축함을 가리도록 백악관이 해군에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과 해군, 그리고 일본에 있는 백악관 선발대는 매케인함에 방수포를 쳐 가리려 했으나 이를 안 해군 고위층이 방수포 대신 바지선을 전면에 배치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타계한 매케인 전 상원의원(애리조나)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이지만 상이한 성향으로 건강보험 등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충돌을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매케인 의원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해왔다.
이런 점을 간파한 백악관 실무진이 대통령의 심기를 고려해 '알아서'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고 부인하면서도 실무진의 '선의'를 두둔하고 있다.
NYT는 30일 '존 매케인함' 경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원한에 얼마나 안절부절하고 있으며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어느 선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구축함 존 매케인은 매케인 상원의원뿐 아니라 베트남전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부친과 역시 2차 대전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조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미 해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매케인함은 이라크전에 참전했을 뿐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중국함정들을 견제하는 작전을 벌여왔다. 지난 2017년에는 상선과 충돌사고를 일으켜 10명의 승조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미 해군에서는 갖은 풍파를 겪은 매케인함 승조원들을 영웅시하고 있다.
백악관이 대통령의 심기를 이유로 매케인함 승조원들의 대통령 연설 참석을 차단하자 퇴역 장성과 의원들을 비롯해 각계로부터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고 매케인 상원의원은 물론 매케인함 승조원들을 집단으로 모독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자문을 제공해온 퇴역 육군장성 잭 케인은 "지휘 계통에 있는 누군가가 멍청이 같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으며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로드아일랜드)은 "치졸함 이상의 것"이라면서 "수치스러운 행위로 백악관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군을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과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걸프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에 올라 '임무 완수'라는 구호 아래 연설해 '정치화' 구설에 올랐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고 로버트 케네디 의원 장례식에서 연주됐다는 이유로 '공화국 찬가'를 연설문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한 사례가 거론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매케인함 경우는 정도가 훨씬 지나쳤다는 지적이라고 NYT는 전했다.
매케인함 은폐 파문은 당장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에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섀너핸 장관 대행은 상원 인준청문회를 앞두고 있으며 민주당 의원들은 만약 섀너핸 대행이 은폐 지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당장 사임해야 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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