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보다 말이 앞선 정권"…끊임없는 연정 내분·EU와의 불화
1년 만에 정치 구도도 변화…반난민 '동맹' 뜨고, '오성운동' 지고
연정와해 가능성 대두…9월 조기총선설 제기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립정부가 1일로 탄생한 지 꼭 1년을 맞이했으나 연정 내부의 파열음,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제, 유럽연합(EU)과의 갈등 속에 존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작년 3월 총선에서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자 약 3개월에 걸친 지루한 연정 협상 끝에 기성정치의 해체를 꿈꾸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반(反)난민을 앞세운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이 연합한 서유럽 최초로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권이 출범했다.
![](https://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9/06/01/AKR20190601042700109_01_i.jpg)
당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오성운동과 가까운 법학 교수 주세페 콘테를 총리로 내세운 연정은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가 각각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아 진용을 갖췄다.
지지 기반과 철학이 워낙 다른 두 정당의 '어색한 동거'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기성 엘리트 정치인이 아닌, 민중이 이끌어가는 정치를 표방한 디 마이오 부총리와 '이탈리아 우선'을 전면에 내세운 살비니 부총리 등 정부의 두 실세는 이탈리아를 변화시키겠다고 큰소리치며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 정부 1년 동안 이룬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평가다.
동맹과 오성운동의 주도권 싸움으로 연정 내 파열음이 커지고, 재정적자 확대 정책을 둘러싸고 작년 하반기 EU와 대치하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이 가중된 여파로 작년 3, 4분기에 경제가 연속으로 역성장을 하는 등 경제 또한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정치 분석가들은 포퓰리즘 정부가 그럴싸한 말은 많지만, 이를 실행에 옮겨 성과로 낸 사례는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9/06/01/AKR20190601042700109_02_i.jpg)
눈에 띄는 정책 변화로는 오성운동의 핵심 공약으로, 저소득층과 실업자들에게 월 최대 780유로(약 100만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도입 절차를 밟고 있는 것, 연금 수령 연령이 하향된 것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환영하는 이 두 정책은 국내총생산(GDP)의 132%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이탈리아의 재정에 한층 부담을 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EU는 이런 가운데 지난 29일 이탈리아 정부에 서한을 보내 부채 감축 노력을 하지 않고, 공공재정이 악화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해 양측의 갈등이 고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동맹의 압승을 이끌며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 살비니 부총리는 EU의 이런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경제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면 GDP의 3% 이내로 회원국의 재정적자를 제한한 EU의 재정규약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EU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 태세다.
![](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9/06/01/AKR20190601042700109_06_i.jpg)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은 올해 예산안 편성 시 재정적자를 전 정부의 약속보다 크게 늘려 잡음으로써 작년 말에도 EU와 날 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탈리아는 EU와 대치하면서 스프레드(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의 금리차)가 치솟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EU와 절충해 결국 재정적자 규모를 소폭 낮췄다.
EU와의 갈등이 재점화할 기미를 보이며 스프레드는 다시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현재 이탈리아의 스프레드는 287bp까지 올랐다. 이는 포퓰리즘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작년 5월의 150bp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 기간 정치 지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작년 3월 총선에서 32%가 넘는 표를 얻어 창당 9년 만에 단숨에 최대 정당이 된 오성운동은 지난 26일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7%에 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중도좌파 민주당에조차 밀려 3위로 전락했다.
반면, 작년 총선 때 17%의 표를 얻었던 동맹은 살비니 부총리의 반난민 정책이 먹히며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고,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34%가 넘는 득표를 하며 일약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내무장관을 겸하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는 작년 6월 취임 이후 "이탈리아는 유럽의 '난민 캠프'가 될 수 없다"며 지중해에서 난민을 구조한 뒤 이탈리아 항구에 이들을 내려놓던 비정부기구(NGO)의 난민구조선의 입항을 금지하고, 리비아 해안경비대의 난민 단속 활동을 독려하는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EU 차원의 난민 분산 수용을 압박해 주변국과 갈등을 빚어 왔다.
![](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9/06/01/AKR20190601042700109_05_i.jpg)
주변국과는 충돌했지만, 이 같은 강경 난민정책 덕분에 국내 지지를 급격히 불린 살비니 부총리는 이제 자신이 마치 포퓰리즘 정부의 총리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연정 파트너인 오성운동에 세금 인하, 부유한 북부 지역의 자치권 확대, 이탈리아 북서부 도시 토리노와 프랑스 남부 리옹을 잇는 고속열차(TAV) 건설 등 핵심 의제에 있어 동맹의 뜻을 따를 것을 압박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동맹이 1개월 안에 오성운동이 이 같은 동맹의 핵심 공약에 찬성하지 않을 경우 연정을 깨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사실상 최후 통첩을 했다고 최근 보도해 귀추가 주목된다.
오성운동으로서는 북부 지역의 자치권 확대에 찬성할 경우 지지 기반인 남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알프스를 관통하는 터널 공사를 수반하는 TAV 건설까지 동맹에게 끌려간다면 당내 세력이 큰 환경운동 출신 당원들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 뻔해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다.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지난달 31일자 지면에서 "1개월 안에 포퓰리즘 정부가 존속하느냐 와해되느냐를 알게 될 것"이라며 "지난 1년간 동맹과 오성운동은 서로 반목했으나 끊임없이 협상하면서 이해 관계가 다른 법안들을 채택했다면, 이제는 살비니 쪽으로 균형의 추게 기울어 협상이 더 이상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동맹도, 오성운동도 현재까지는 "정부에 충실할 것"이라면서 연정 와해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나, 현지 언론은 양측의 끊임없는 의견 충돌과 철학적 차이로 미뤄볼 때 연정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연정이 깨지면 오는 9월 하순에 조기총선이 실시될 것이란 관측이다.
조기총선이 실시되면 동맹이 조르지아 멜로니 대표가 이끄는 비슷한 성향의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과만 연대해도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난민, 반이슬람 성향의 FdI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6.4%의 표를 얻어 선전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