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머리 아닌 몸으로 그린다…테크닉엔 관심 없어"

입력 2019-06-04 16:52  

이건용 "머리 아닌 몸으로 그린다…테크닉엔 관심 없어"
1970년대부터 신체 퍼포먼스·드로잉 선보인 전위미술 1세대
페이스서 40여점 전시…신체드로잉·손의논리·장소의논리 사진 출품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서울. 전시장 중앙 의자에 걸터앉은 노작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양쪽 양말을 벗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쪼그리고 앉아 몸체를 둥글게 만 노작가는 그 자세 그대로 '맹렬히' 전진했다. 그는 오른손에 쥔 백묵을 좌우로 쉼 없이 움직이면서 마루 위를 열심히 그어나갔다. 그가 지난 자리에는 백묵이 만들어낸 선과 발바닥이 만들어낸 길이 교차했다.
원로 미술가 이건용(77)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선보여 화제를 모은 '달팽이 걸음'이다. "그린다는 것의 가장 기본이 선을 긋는 것입니다. ('달팽이 걸음'은) 평면과 신체가 만나는 과정을 통해 선이 나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이건용은 한국 전위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건용이 1970년대 선보인 작업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기행(奇行)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는 달팽이 걸음을 하거나, 건빵을 먹거나, 테이프를 자르고 잇거나, 나이를 세거나 하는 단순해 보이는 행동을 비틀었다. 신체와 언어, 사물, 장소, 관계 등을 화두로 펼친 퍼포먼스만 해도 50여개에 이른다.
이들 이벤트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이건용은 1975년 주인이 하인을 부르는 '이리 오너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가, 권력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끌려가기도 했다. "어떻게들 눈치가 빠른지……. 허허허."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1969년 아방가르드 미술그룹 'ST'(Space and Time) 창단 회원전에서 선보인 회화 또한 전통적인 미술의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캔버스를 등진 채 손을 뻗어 그리거나, 캔버스 앞에서 체조라도 하듯이 양팔을 뻗어 그림을 그린다. 적극적으로 몸을 매개한 작업들이다. "내 머리가 그린 것이 아니라 내 몸이 그린 것이다. 세계 회화사에서 이렇게 뒤로 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는 작가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페이스갤러리 서울 개인전 '현신(現身)'은 퍼포먼스부터 회화, 조각,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건용의 작업 4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작가는 "나는 테크닉에는 관심 없다"라면서 내 작품은 특정한 양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데서 출발한 사유"라고 강조했다.
"이러저러한 것이 인기라고 하면 더 세련되게, 색깔도 바꿔가며 작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작가도 일부 있다. 10년 후에 그 작업을 왜 했느냐고 하면 답을 못 한다. 그들은 예술을 양식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에서 '뼈'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건용이 정의하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메소드이고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통해서 시대를 뛰어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죠."
갤러리는 이번 전시에서 '장소의 논리' '손의 논리' '신체드로잉'을 과거 이건용 전시에서 볼 수 없던 사진 작품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건용은 요즘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2010년작 '신체드로잉' 한 점이 1억4천만 원에 팔려 화제를 낳았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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