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현병 환자 범죄 잇따라…무방비 상태서 당해
전문가들 "사법 입원제도 도입 시급…치료감호시설도 확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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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종합=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조현병이 있는 한 40대 남성의 난데없는 고속도로 역주행은 결혼을 앞두고 달콤한 꿈에 젖어있던 예비신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4일 오전 7시 34분께 평소처럼 운전하던 최모(29) 씨는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해 달려오던 박모(40) 씨의 소형 화물차를 발견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최 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역주행 차량과 정면충돌했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숨진 최 씨는 이달 말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그의 차 안에서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청첩장이 여러 장 발견됐다.
박 씨가 갑자기 역주행을 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조현병 치료를 받던 중 최근 약을 먹지 않아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조현병은 망상, 환청, 정서적 둔감 등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적 질환이다.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묻지마 칼부림으로 전국을 경악하게 한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42)도 조현병 환자였다.
사실상 방치상태에 놓여있던 안인득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3명을 다치게 했다.
당시 경찰은 안인득에 대해 10년 전 한 제조업체에서 허리를 다쳐 산업재해 신청을 했으나 '불가' 판정을 받았고 사회적 불만이 쌓이면서 피해망상 증세가 심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현병 환자의 범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에 피해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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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조현병 환자 장모(18) 군은 지난 4월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에 살던 여성 김모(74) 씨를 살해했다.
장 군은 지난 2월까지 병원치료를 받았고 병원 입원을 앞둔 상태였지만, 장 군이 거부해 입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18일에도 30대 조현병 환자가 부산 한 편의점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를 마구 휘둘러 손님 3명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조현병은 지난해 12월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조현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지면서 또다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임 교수 사건 이후 국회는 이른바 '임세원법' 2개를 처리했다.
의료인이 직무 중 폭행으로 사망하면 가해자를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일부 정신질환자의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직권으로 정신건강 복지센터에 통보해 지역사회에서 지속해서 재활·치료를 지원하도록 하는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정부도 정신질환자 치료·보호를 위한 국가 책임이 강조되자 최근 '중증 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했다.
내년 중 17개 시·도에 '정신건강 응급개입팀'을 설치해 정신질환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사고 현장에 요원을 출동시켜 응급상황 대응력을 강화하고, 정신건강 복지센터 인력을 빠르게 확충해 요원 1인당 관리대상자를 60명에서 25명으로 낮춘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예산과 시설 부족, 제도적 뒷받침 미비 등이다.
조현병과 우울증 등 중증 정신질환자가 50만 명가량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발병기 집중 치료와 정기적인 외래치료 등을 해야 하지만 환자 수가 많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사례관리 인력 부족, 재활시설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사법 입원제도 도입 등 국가 책임에 무게를 둔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외래 또는 입원치료를 받도록 강제하는 법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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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복잡한 절차와 책임 문제로 치료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신질환자 관련 사건·사고가 생길 때마다 국가가 환자 치료를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촉구해왔다"며 "대표적인 것이 법원과 같은 사법기관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 입원제도"라고 말했다.
법원도 조현병 환자를 위한 치료감호시설 필요성을 언급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최근 자폐성 장애와 조현병 증상이 있는 A 씨에 대한 상해와 폭행 사건 재판을 진행하면서 A 씨에 대한 치료감호가 필요한지 확인하기 위해 공주 치료감호소에 사실조회를 했다.
그 결과 현재 공주 치료감호소에 약물복용 외에 자폐 장애를 위한 언어치료나 심리치료 과정이 운영되지 않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폐 장애 특성을 가진 사람의 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고 특수 재활치료 과정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공주 치료감호소에 적절한 치료 과정이 없는데도 A 씨에게 치료감호 처분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했으나, 가정 내에서는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그에게 1심처럼 벌금 100만원과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치료감호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치료감호 시설을 설립·운영해 판결의 적정한 집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현재 가족들이 부담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치료감호소를 확충하고 운영실태를 내실 있게 함으로써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를 도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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