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동원해 만든 인천 지하호…일제 강점 흔적 '생생'

입력 2019-06-06 08:00  

조선인 강제동원해 만든 인천 지하호…일제 강점 흔적 '생생'
인천 함봉산 일대 밀집…1940년대 무기 보관·생산용으로 조성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지난 4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함봉산 자락에 있는 지하호 입구.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웃돈 날씨에도 스산한 한기가 몸을 감쌌다. 스마트폰 손전등을 비추며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호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 안에 서식하던 꼽등이도 여기저기 뛰었다.
성인 키 정도 높이로 조성된 지하호는 150m가량 이어졌다. 이 지하호는 'C 구역 6번'으로 불린다.
인천 부평문화원은 2016년 인천시 부평구 산곡 1ㆍ3동 일원을 대상으로 '부평토굴 생활역사문화콘텐츠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24개 지하호를 파악했고, A·B·C·D 4개 구역으로 나눠 구역별 번호를 붙였다.
중간중간 막혀 있는 곳도 있어 전체 길이 등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유지에 위치한 지하호 가운데 주인 동의를 얻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서는 C 구역 6번 지하호밖에 없다.
이들 지하호는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조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평문화원이 이 일대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징용자 상당수는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조성 시기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1940년대 후반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약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 지하호에서 이뤄진 강제노역의 흔적은 지금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지하호 끝에 다다르자 암벽에 길쭉한 형태의 구멍이 있었다. 폭약을 터뜨리기 위해 각종 굴착 장비로 구멍을 낸 흔적이다.



이곳에 폭약을 넣은 뒤 터뜨려 지하호를 넓혀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호 곳곳에서 암반에 박혀 있는 둥근 나무토막도 발견됐다. 당시 지하호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무토막을 암반에 박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규혁 부평문화원 기획사업팀장은 "당시 지하호 조성에 투입됐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선인 학생들이 강제징용돼 하루 2교대로 작업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지하호는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돼 있지만 한 곳에 이처럼 대규모 지하호가 밀집된 것은 함봉산 일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 근처에 한강 이남 최대 일본군 군수물자 보급공장으로 불리던 육군 조병창이 있어서 군수물자 보관 목적으로 이곳에 대규모 지하호를 조성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태평양전쟁에서 밀리던 일본이 본토와 한반도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함봉산 지하호에 자체 생산 기능까지 갖추려고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광복 이후에는 새우젓 토굴 등으로 활용된 덕분에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지금도 지하호 입구에는 새우젓 보관용으로 사용되는 드럼통 등이 남아있다.
과거 지하호에서 새우젓 토굴을 운영했다는 조배홍(77)씨는 "과거 인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뿐만 아니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새우젓이 이곳에 보관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함봉산 일대 지하호를 주변에 있는 관련 유적과 연계해 역사자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하호 인근 부평미군기지와 3보급단에는 일제강점기 무기공장인 조병창 관련 유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 교수는 "지하호 시설 대부분이 사유지에 포함돼 추후 이 일대를 근대 유산으로 인정받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유자·지방자치단체·문화재청 등이 머리를 맞대고 지하호 주변 역사자원을 교육이나 관광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h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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