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버 데어'의 장민승 감독·정재일 음악감독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그 위에 내리는 비, 눈보라 치는 겨울 산….
영화 '오버 데어'가 담아낸 제주도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제주의 풍경과는 다르다.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제주에서는 이런 장면이 계속됐을 것만 같다. 날 것의 자연이 마치 반복되듯 담겨있다. 그리고 이 장면들 위로 진혼곡과 같은 음악이 흐른다. 스토리도, 대사도, 자막도 없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오버 데어'의 장민승 감독은 "영화의 각 장면은 같고도 다르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같은 장면이고 세부적으로 보면 다르다. 물의 순환을 담고자 했다"고 영화에 관해 설명했다.
촬영만 3년, 음악 작업까지 하면 총 4년이 걸렸다.
"제주에는 몇만년 전에 생성된 돌이 있고 오늘 생겨난 이슬도 몇만 년 전부터 순환하고 있는 것이죠. 제주가 가진 본성을 보고 싶었고, 그것들을 '오버 데어'에 기록하게 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제주의 변화가 급물살을 타니까 제주를 미학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작업을 저에게 의뢰했어요. 초기에는 사진을 제안받았는데, 동시대적인 매체와 방법으로 기록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영상으로 만들게 됐죠."
장 감독은 "요즘 사람들에게는 온전하고 듣고 보고 하는 공간이 없어져 가는 것 같다"며 "등장인물도 없고 대사도 없지만, 음악과 풍경으로만 이뤄진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자기만의 시간과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대사가 없는 영화에서 영상과 함께 양대 축을 담당하는 음악은 정재일 음악 감독이 맡았다.
"제주도는 과거 탐라국이었고, 근대에는 아픈 역사도 있고 또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름다운 절경이 있고요. 그런데 (장민승 감독이 담은 화면에서) 보이는 파편들은 '이게 어디일까? 어느 행성일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주적인 풍경이었죠. 제주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저히 어딘지 알 수 없는, 화면에서 압도적인 힘들이 느껴졌어요. 만약에 그 장면 앞에 내가 서 있다면 두렵기도 하고요. 그래서 감정을 배제한, 보편적이면서 정체불명의 음악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죠."(정재일)
"몇 개의 정리되지 않은 장면들을 주고, 거기서 얻어지는 기분으로 음악을 만들되, 그 음악이 45분의 서사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그래서 화면과 음악이 만나면 거기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무엇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이 영화는 음악영화입니다."(장민승)
영화를 끌어가는 정 감독의 진혼곡은 웅장하면서 압도적인 동시에 슬프고 두려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니까 흐느낌이나 곡소리처럼 느껴져서 무섭게 들리실 수도 있어요. 그것은 제가 만든 의도와는 상관없죠. 우주에서는 여성의 에너지가 핵심이니까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폭포 소리와 같은 압도적인 자연의 소리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할까 하다가 오케스트라를 선택했죠. 공기나 바람 같은 음악이 되길 바랐어요. 진혼곡의 형태가 원초적이기도 하고, 한국 전통 선율이 계면조잖아요. 그래서 슬픈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정재일)
스무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담당해온 정재일 감독은 최근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음악도 맡아 화제가 됐다.
장민승 감독은 "'기생충' 음악까지 정재일 감독이 만든 음악 다 들었는데, '오버 데어'가 '끝판왕'이다"며 "특히 엔딩 크레디트 음악은 교향곡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장 감독이 고등학생, 정 음악 감독이 초등학생이던 1993년에 처음 만났다. 2009년 처음 함께 작업한 이후 2012년 장민승+정재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공동 작업 계획에 대해 두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계획이 내일도 하나가 생겼다가 없어지곤 해요."(장민승)
"장 감독이 지금 막 결혼해서 저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정재일)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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