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기도 못 뛴 이규혁·김주성 "기회왔을 때 보여줄 수 있도록 "
(비엘스코-비아와[폴란드]=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한국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지난 5일(한국시간)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일본과의 16강전을 치르기 하루 전날 훈련을 마친 뒤 수비수 이규혁(제주)이 자청해서 선수들에게 한마디 했다.
"경기 뛴 사람도 있을 거고 못 뛴 사람도 나올 건데, 못 뛴다고 뒤에서 표현하지 말고 다 같이 한 팀으로 응원하고 내일 잘해줬으면 좋겠다."
누구나 할 수 있음 직한 말이었지만 이규혁이 한 말이었기에 동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소속팀 사정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정우영(바이에른 뮌헨)의 대체선수로 발탁된 이규혁은 이번 대회 16강전까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우리 대표팀 21명의 선수 중 아직 단 1분도 뛰지 못한 것은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이규혁과 수비수 김주성(서울)뿐이다.
골키퍼 박지민(수원)과 최민수(함부르크)를 포함하면 4명이 아직 출전 기록이 없다.
일본과의 16강전에서 1-0으로 승리한 대표팀은 9일 비엘스코-비아와에서 열릴 세네갈과의 대회 8강전 준비를 위해 7일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에 앞서 만난 이규혁의 마음가짐은 똑같았다.
그는 "경기에 들어가는 선수와 못 뛰는 선수는 나온다"면서 "제가 뛰질 못했지만, 뒤에 있는 선수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며 앞선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출전하고 싶은 건 어느 선수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못 이겨내고 표현하고 티를 내면 팀 분위기도 안 좋아질 것"이라면서 "그것까지 이겨내면 기회가 왔을 때 좋은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주성도 "아무래도 선수이다 보니 못 뛰면 자신에게 실망스럽기도 하고 힘든 부분도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 21명은 원팀이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뛰는 선수들은 힘을 받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이규혁의 말이 와닿았다고 밝혔다.
이규혁의 말은 팀을 더 단단하게 했다.
공격수 오세훈(아산)은 이규혁에게 따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규혁은 "기회를 받지 못하다가 계속 뛰는 세훈이도 자기 생각대로 뛰고 싶은데 못 뛰니 부담도 되고 힘들었나 보다. 누가 선뜻 이야기하지 않아서 자신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규혁은 인터뷰 중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잠시 울컥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는 최준(연세대)은 어떤 말을 해줬느냐는 물음에는 잠시 침묵하더니 "항상 잘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고, 자기가 언제 다칠지 모른다면서"라고 답했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은 일본과의 16강전이 끝난 뒤 선수들의 체력을 걱정하면서 그동안 출전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의 활용 의사를 내비쳤다.
이규혁은 "기대감보다는 다른 선수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면서 "매 순간 잘 준비하고 있으니까 기회 왔을 때 더 잘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주성도 "월드컵이 좋은 무대, 좋은 기회인 것은 알고 있다.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아주 힘들었는데 팀이 열심히 해 올라가는 것을 보니 묵묵히 응원하게 되더라"면서 "기회가 왔을 때 내가 해야 할 것만 경기장에서 보여주면 되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훈련하러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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