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대구면 항동마을 황복님·이용금 할머니
폐교 위기 막으려 올해 대구초등학교 신입생으로 입학
(강진=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이 나이에 책가방 메고 학교에 다닌다 하니 온 동네 소문이 다 났어요."
"그래도 공부가 재밌고 등굣길이 제일 신납니다. 받침이 어려워 받아쓰기도 다 틀리지만, 공부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6년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면 여든인데 그때까지 건강하게 무사히 잘 졸업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진군 대구면 중심지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6.5㎞ 떨어진 항동마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간 마을회관 인근 버스 정류장에 가면 매일 오전 7시 50분, 책가방을 메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 1학년 동급생으로 나란히 대구초등학교에 입학한 황복님(76), 이용금(73) 할머니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두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23년 개교해 100여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오던 지역의 초등학교가 올해는 입학생이 1명도 없어 학급 자체가 없어질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최소 신입생 수를 채우지 못하면 학교가 폐교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할머니를 비롯해 인근 마을의 7명의 어르신이 올해 초 대구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1학년 학급 전체를 고령 학생들로 채워 폐교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용금 할머니는 처음에는 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다.
한글을 모르니 학교에 가서도 우세스러울까 봐 싫다고 했다. 그런데 복님 언니가 가자고 했다고 한다.
언니가 나서서 두 번 세 번 학교에 같이 다니자고 설득하니 생각이 변했다.
내가 부족해도 언니에게 기대며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 할머니는 말했다.
황복님 할머니가 특히 적극적으로 나서 주변 어르신들을 설득하고 입학을 독려한 데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학교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고 한다.
오빠들은 남자라, 언니는 집안의 맏이라 학교에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황복님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황복님 할머니는 9일 "입학 전 여성농업인 한글학교 수업에 참석한 적이 있다. 글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면서 "일주일에 2번 4시간 수업도 이렇게 좋은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학교생활 기대와 설렘도 있었다고 했다.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자음과 모음, 받침이다.
받아쓰기 수업이 주를 이룬다. 단어만 반복해 공책에 받아 적던 것이 입학 3개월여 만에 문장 받아쓰기 수업으로 발전했다.
대구초등학교 1학년 모두 고령의 신입생이다 보니 담임선생님이 손녀보다도 어리다.
나이 어린 선생님을 존중하기 위한 할머니들 사이의 규칙도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선생님께 물어볼 것, 선생님께 반드시 존댓말을 사용할 것 등이다.
7명의 신입생 중 우등생으로 손꼽히는 황복님 할머니는 최근 견문을 넓히고자 영어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
황 할머니는 "한문이나 영어를 똑똑히 모르니까 아직 못 읽는 글자들이 있다"면서 "선생님께 영어 밑에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달라고 했더니 알파벳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복사해 주셨다. 그걸 집에 가져와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용금 할머니는 한결같은 성실함이 장점이다.
모내기 직후 바쁜 농번기지만 입학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다. 출석이 반 결석이 반인 다른 할머니와 달리 개근상을 타는 것이 이용금 할머니의 목표다.
이 할머니는 "우등상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받지만, 개근상은 나도 받을 수 있다. 부족한 공부 머리를 부지런함으로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황복님 할머니는 가벼운 접촉 사고를 겪어 경찰서에 갈 일이 있었다.
하지만 자필진술서를 작성하며 할머니는 오히려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황 할머니는 "솔직히 전에는 벌벌 떨렸다. 이름을 쓰라고 하면 한글을 몰라 벌벌 떨렸는데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불러준 대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다 쓸 수 있었다. 하나도 안 틀리고 다 썼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하나씩 깨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늦게라도 공부를 시작한 것이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늦깎이 단짝 친구가 되어 학교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두 할머니의 바람은 하나다.
졸업까지 아프지 않고 함께 무사히 학업을 마치는 것이다.
황 할머니는 "해보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면서 "늦은 나이에도 꿈을 가질 수 있게 배움의 기회를 준 이주영 교장 선생님과 조윤정 담임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chog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