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해도 ''을'들의 갈등'…노동계 '경제민주화'로 맞불

입력 2019-06-09 08:05  

최저임금 올해도 ''을'들의 갈등'…노동계 '경제민주화'로 맞불
양대 노총, 한상총련과 손잡고 재벌 개혁 요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노동계가 올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재연되고 있는 이른바 '을(乙)과 을의 갈등'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을 둘러싼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갈등을 경제 민주화를 위한 '을과 을의 연대'로 전환하는 데 주력하는 양상이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오는 10일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 단체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서울시와 '제로페이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 추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이 자리에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방기홍 한상총련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3개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업무협약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줄이는 모바일 간편 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 가맹점 확대 등을 위해 3개 기관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노총과 한상총련이 최저임금 인상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등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상생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업무협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 민주화에 있다. 대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이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흘러내리도록 하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상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이윤이 자영업자에게 조금 더 분배되도록 함으로써 자영업자의 이윤과 임금 지급 능력을 강화하고 최저임금을 올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증진한다는 구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오는 1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상총련, 민중공동행동과 함께 '재벌 체제 개혁을 위한 을들의 만민공동회'를 개최한다.
주최 측은 이 행사에서 100개의 원탁을 설치해 1천명이 참여하는 재벌 개혁 토론회를 하고 문화 집회를 열어 재벌 개혁 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재벌 체제를 정조준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경제 민주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한국노총-한상총련의 업무협약과 일맥상통한다.
양대 노총이 자영업자 단체와 손잡고 경제 민주화 요구를 전면에 내거는 것은 최근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을과 을의 갈등이 재연되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5일 처음으로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을 촉구했지만, 자영업자는 2∼3%의 인상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고 반박하는 등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을과 을의 갈등 구도는 지난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돈줄을 쥔 강자들은 뒤로 빠지고 약자들이 전면에 나와 대결하는 구도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 구도는 고착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 저임금 노동자는 임금이 늘어나지만, 자영업자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가 영세 사업장에 속한 현실에서 양자의 대립 구도는 더욱 부각됐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만 돌리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인건비 부담 외에도 과중한 수수료·임대료 부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사회 안전망 부족 등 다양한 원인에 따른 것임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몰아 저임금 노동자의 이익이 곧 자영업자의 피해를 의미하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이 좌우 갈등으로 번져 과열 양상을 보이고 최저임금 인상이 모든 사회경제 문제의 원인처럼 거론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문제를 차분하게 다각도로 보기는 어려웠다. 을과 을의 갈등 구도는 굳어졌고 노동계도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올해는 최저임금 심의 초반부터 경제 민주화를 내걸며 적극적으로 을과 을의 연대를 구축하는 양상이다. 경제 민주화로 자영업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최저임금 인상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청회에서 "노동계가 어떤 요구를 할 때는 '진짜 사장 나와라'고 하는데 여기(공청회에) 나온 사람은 노동자도, 사용자도 사회적 약자"라며 "진짜 사장은 정부로 치면 기재부이고 사용자는 재벌 대기업"이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과 대책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만 참석할 게 아니라 정부와 대기업도 나오게 해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기구인 만큼, 위원회의 틀 안에서 경제 민주화를 의제로 삼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장외에서 적극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한국노총은 이달 중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권재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노동자가 퇴직 등으로 자영업자가 되고 반대로 자영업자가 사업을 접고 노동자가 된다. 양자는 결국 같은 처지"라며 "올해는 을과 을의 연대로 경제 민주화를 달성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ljglor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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