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저온에 생산량 급감·무역전쟁에 추가 관세…가격 5년 만에 최고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12일 오후 베이징 차오양구 젠궈먼와이다제의 한 슈퍼마켓에서 70대 정도의 한 남자가 바나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과일 가격이 올해 특히 비싸다"면서 "과일을 살 엄두를 못 낸다. (상대적으로 싼) 바나나만 사려고 한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그는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 국가가 정책으로 과일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슈퍼마켓에서 만난 한 부부는 수박 반 개를 가리키면서 "작년에는 10위안(약 1천700원) 정도 하던 게 지금은 19위안"이라고 했다.
이들은 1주일에 2차례 장을 본다면서 "작년 같으면 한 번에 300위안씩 썼는데 요즘은 500위안 정도 쓴다"고 말했다.
과일 코너의 점원은 손님들의 씀씀이가 확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한 사람이 1∼2근씩 샀었지만, 지금은 1∼2개만 산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과일을 보통 근 단위로 계산하는데 1근은 500g이다.
이 직원은 특히 사과 가격이 많이 올랐다면서 생산량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는 보통 품질의 사과는 물량이 없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요즘 '과일 자유'(水果自由)라는 말이 회자한다. 비싼 수입 체리를 크게 망설이지 않고 사 먹을 수 있는 '체리 자유'라는 말이 몇 년 전에 나왔다면 이제는 사과나 배, 복숭아 같은 흔한 과일까지 포함해 모든 과일을 자유롭게 먹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
광저우일보가 온라인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가격 상승 때문에 최근 과일을 덜 샀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10만4천명 가운데 8만4천명에 달했다.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과일값이 고깃값보다 비싸다", "토마토를 과일로 여기고 먹을 수밖에 없다"는 불평이 나온다. 과일 껍질을 깎는 것조차 아깝다는 사람도 있다.
중국 농업부에 따르면 중국의 과일 가격은 2014년 이후 5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후지 사과, 거봉, 배, 파인애플, 바나나, 수박, 귤 등 보통 과일 7종의 평균 가격은 지난달 20∼26일 기준 ㎏당 7.03위안으로 1년 전의 5.53위안보다 43% 상승했다.
국가통계국이 1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지표에도 과일값 급등은 눈에 띄게 나타났다.
지난 5월 신선과일 가격은 1년 전보다 26.7% 올라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깝다. 이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영향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오른 것과 함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5개월 만에 최고인 2.7%에 다다른 주된 요인이었다.
통상 5∼6월은 계절 과일이 나오기 전에 과일 가격이 가장 높은 철이긴 하지만 올해 유독 비싼 것은 날씨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주요 과일 산지를 덮친 서리와 저온 현상 등이 영향을 미쳤다.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와 배 생산은 각각 25%와 20% 감소했다.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오렌지와 체리 같은 수입 과일은 추가 관세가 붙어 가격이 높아졌다.
일부 소비자는 슈퍼마켓이나 과일 전문점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신선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싼값에 사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도 과일 등 식품 가격이 치솟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리커창 총리는 최근 현장 시찰을 하다 차를 세우고 과일 가게를 둘러본 뒤 지난 5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과일 등 신선농산물의 공급과 가격이 안정적인 수준이 되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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