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경관 "빨리 끝내려고"…동료들도 "이해 안돼"
분실했다던 휴대전화는 2년7개월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우리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가수 정준영(30)의 2016년 여자친구 불법촬영 혐의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정씨의 변호사와 짜고 부실하게 수사한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한 이유는 동료 경찰관들조차 납득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석연치 않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당시 정씨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A(54) 경위는 정씨의 변호사 B(42)씨에게 "휴대전화를 분실한 걸로 쉽게쉽게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A경위는 B변호사로부터 식사 접대도 받았다. 결국 사건은 보통 몇 달씩 걸리는 통상적인 성범죄 수사 기간보다 훨씬 짧은 17일 만에 마무리됐다. 핵심 증거물인 휴대전화조차 확보하지 않았다.
A 경위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직무유기 혐의로 조사받으면서는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관이 피의자 변호인에게 '대놓고' 부실수사를 제안해 실행에 옮긴 이유로는 터무니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당시 동료 경찰관조차 A경위가 사건을 처리한 과정을 두고 "이해 안 되는 일"이라고 했을 정도다.
경찰은 A경위와 B변호사를 직무유기 공범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A경위가 B씨에게 이같은 제안을 하게 된 동기를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혐의와 공모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정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며 "이들의 주거지와 계좌 내역 등을 압수수색해 들여다봤지만, 두 사람 간에 식사 접대 외에 금품 등이 오간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고 윗선에서 부당한 지시가 내려온 사실도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준영이 당시 범행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누가 '공장 초기화'해 증거를 인멸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B변호사는 정준영이 여자친구로부터 고소당하기 전후로 정씨를 비롯한 소속사 직원들과 3차례 대책회의를 가졌다.
B씨는 정씨가 여자친구를 불법 촬영하는 데 사용한 휴대전화를 경찰에 임의제출하지 않고 사설 업체에 포렌식을 의뢰해 다음 날 이를 건네받았다.
이후 B씨는 이른바 '클럽 버닝썬 사건'이 불거진 뒤 정준영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다시 입건된 직후인 2019년 3월 10일까지 약 2년 7개월간 해당 휴대전화를 자신의 사무실에 보관했다.
정준영의 소속사 직원들은 경찰 조사를 앞두고 B변호사와 B씨 사무실 직원 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안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다음날인 3월 15일에야 B씨는 문제의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휴대전화가 제출 전 '공장 초기화'돼 데이터 대부분을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그동안 B씨가 공장 초기화를 한 것으로 보고 수사해왔으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휴대전화를 확인한 정씨 소속사 관계자 중 일부는 정씨의 휴대전화에 불법촬영 동영상 등의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5일간 휴대전화가 B변호사와 B씨 사무실 직원 2명, 정준영의 소속사 관계자 3명의 손을 거치는 도중 초기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아이폰 특성상 공장 초기화를 해도 언제 했는지 전혀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 중 누가 증거를 인멸했는지 특정되지 않았다"고 불기소 의견 송치 이유를 밝혔다.
정준영은 2015년 말 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성들과의 성관계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는 등 동영상과 사진을 지인들과 수차례 공유한 혐의로 올해 4월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만약 2016년 수사 당시 경찰이 정씨의 휴대전화를 정상적으로 확보해 내용을 복원했다면 정씨의 불법촬영이 일찍 드러나고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A경위가 2016년 당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면 고소장에 적시된 범행뿐만 아니라 이전의 동영상 유포 혐의도 진작에 수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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