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이스라엘 병원행 불가…복잡하고 엄격한 입국제도 '도마'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낯선 곳, 낯선 사람 곁에서 뇌수술을 받은 뒤 홀로 죽어간 어린 여자아이의 사연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거주자들의 복잡하고 엄격한 이스라엘 입국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에 사는 5살 아이샤 아 룰루는 최근 낯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병실로 옮겨졌다.
아이샤는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계속 울어댔으나, 곁에 부모는 없었다.
이스라엘 당국이 아이샤가 봉쇄지역인 가자지구에서 예루살렘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을 허용했으나, 그의 보호자로는 부모를 포함한 가족 대신 낯선 사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이샤는 상태가 날로 악화했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가자지구 집으로 돌아왔다. 1주일 후 아이샤는 세상을 떠났다.
붕대로 머리가 감긴 채 병원 침대에서 살며시 미소짓는 아이샤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채 피우지도 못하고 쓰러진 소녀의 사연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샤의 아버지 와심이 "아이를 낯선 곳에 맡기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예루살렘은 한 시간 거리지만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라고 고통을 토로했으나, 가자지구 내 아픈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큰 고통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환자 보호자의 이스라엘 입국 신청은 대략 절반이 거부되거나 아직 답이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18세 미만의 수십명을 포함해 환자 600명 이상은 홀로 또는 가까운 가족 없이 이스라엘로 가야만 했다.
현재의 이런 제도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친서방 성향의 팔레스타인자치정부를 무력으로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2007년에 비롯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가자지구 내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장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며 봉쇄를 옹호하지만, 가자지구 내 빈곤과 실업, 상수도, 전기, 의료 등 모든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일련의 관료주의적인 장애물들을 통과해야만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홀로 가는 것을 원치 않거나 긴급 처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 친척과 동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 모두 이스라엘 입국 승인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WHO에 따르면 2012년에는 환자 93%, 보호자 83%에 대해 승인이 떨어졌지만, 올해 4월에는 이 비율이 환자 65%, 보호자 52%로 뚝 떨어졌다.
아이샤의 경우 뇌종양 진단을 받은 뒤 바로 승인을 얻었지만, 부모는 여의치 않았다.
37살인 아버지 와심은 보통 55세 이하 남성에게 적용되는 추가 심사가 필요했고, 이는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안타깝게도 엄마 무나는 이집트에서 양육돼 승인에 필요한 이스라엘 발행 신분증이 없었다.
부부는 아이샤의 숙모와 75살의 할머니를 보호자로 신청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거부당했다. 부부는 급한 대로 아이샤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먼 친척의 지인을 내세웠고 결국 허가를 받아냈다.
이스라엘은 당장 기존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신청자들의 신원 조사를 담당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는 성명에서 "하마스가 이끄는 가자지구 내 테러조직들은 이스라엘의 인도주의적, 그리고 의료적 지원을 끊임없이 비꼬아 활용하려 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아이샤를 담당했던 예루살렘의 의사 아흐마드 칸다치는 지난해에도 홀로 병원에 온 가자지구 환자들을 많이 치료했지만 아이샤의 사연은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칸다치는 "아이는 버려지고 배신당했다고 느꼈다"며 "이런 느낌이 아이의 회복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우리는 보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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