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상방문서 트럼프 메시지 전달…이란 "미국 불신" 냉담
(도쿄·테헤란=연합뉴스) 김병규 강훈상 특파원 =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첨예한 가운데 국제적인 이목을 끌면서 이란을 찾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 속에 친미 진영이 이란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용인하에 이란을 방문, 중동 분쟁을 해결하는 국제적 정치인으로서 영향력과 존재감을 보이려 했으나 이에 미치지는 못한 모양새다.
12일 오후 테헤란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중동의 안정, 전쟁 불가를 강조하면서 "중동의 긴장을 막는 데 일본이 최대한 역할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선 로하니 대통령은 "중동 내 긴장을 해결하는 데 일본이 중요하다"라면서도 "중동 내 긴장의 뿌리는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경제 전쟁(제재)이다. 이 전쟁이 끝나야 중동과 세계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훈수'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해 중단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의 제재를 충실히 따르는 일본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언급을 한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로하니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원유 수출 제재를 중단하라는 주장을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해 아베 총리의 중재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이란 언론들은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라면서 초점을 다르게 맞췄다.
아베 총리는 이튿날인 13일 오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면담했으나 미국에 대한 이란의 적대적인 입장을 재차 들어야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자료에 따르면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한 그에게 "귀하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지만 이란은 미국을 전혀 믿지 않는다. 주권국가라면 압박을 받으며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란은 미국과 다시 협상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귀하가 인용하는 미국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으므로 내가 그에게 줄 대답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정권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라고 전달했지만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지난 40년간 미국은 끊임없이 이란 정권을 전복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협상하면 이란이 발전할 것이다"라고 아베 총리가 말하자 "알라의 가호로 우리는 미국과 협상하지 않고도 번영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일본이 우리와 관계 증진을 원한다면 다른 주요국이 그러하듯이 일본도 이란에 선의(원유 수입 등 교역 재개)를 보여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란 보수 세력도 아베 총리를 트럼프 대통령에 종속된 '대리인'으로 여기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란 보수성향의 일간지 케이한은 13일 자에 "일본이 (미국에) 독립적이고자 한다면 이란과 경제적 협력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란과 협력의 전제 조건은 일본이 다른 나라(미국)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NHK와 교도통신 등은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만난 뒤 아베 총리가 "이란 최고지도자가 '핵무기를 제조도, 보유도, 사용도 하지 않겠다. 그럴 의도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최고지도자실은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핵무기 개발을 종교적 칙령(파트와)으로 금지했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미국이 막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의 냉담한 반응에 일본에서도 그가 '중재자'는 아니라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에 대해 이란 내에서 기대감과 함께 냉소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 아베 총리가 와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 테헤란 시민의 말을 전했다.
이처럼 일본 언론들 사이에서 중재 외교의 성과에 대한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이날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한 것이 미국과 이란 사이를 중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의도하고 이란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중재 외교가 애초부터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작았던 만큼 일본 내에서는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을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로 보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와의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해 머쓱해진 아베 총리가 이란 방문을 자국의 유권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며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그가 테헤란을 방문한 13일 오전 이란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이 오만해에서 유조선 2척이 크게 공격받는 민감한 사건이 일어난 바람에 중동의 긴장 완화에 기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다짐이 무색해졌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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