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치를 정의하는 어록이 여럿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 권위를 부여받은 주체가 우선순위를 정해서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느냐에 관한 것이 정치라는 정의도 있다. 수출 주도형 국가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경제성장 엔진이 약해지는 현실이라면 정치권은 응당,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그 배분되는 자원의 획득 주체 및 크기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문재인 행정부가 입법부인 국회에 내놓고 처분을 기다리는 추가경정예산안이 바로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런데 지난 4월 25일 6조7천억원 규모로 제출된 추경안이 국회에서 기약 없이 잠들어 있다. 경기 부양과 미세먼지, 지진 등 재난 대응이 목적인 추경안을 국회가 51일째 손 놓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추경안 처리를 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칠까 봐 우려된다는 언급을 반복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총선용 거품이 끼어있으니 가려내야 한다고 견제한다. 그러나 모두 말뿐이다. 실상이 어떤지는 국회를 열어 심사해야 판별할 수 있을 텐데 여야는 국회 정상화 합의 없이 이번 주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패스트트랙)된 선거법 개정안 등의 합의처리 노력에 관한 표현 수위와 추경 필요성 판단을 명분으로 내건 한국당의 경제청문회 개최 요구 등 여러 쟁점에서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처럼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한국당이 되풀이한다고 하고 한국당은 청와대 등 여권이 정당해산 국민심판이나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발언으로 협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맞선다. 한국당의 몽니를 비판하는 민주당이나 청와대의 자극적 발언이 등원 명분을 꺾는다고 지적하는 한국당 모두 일리가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 채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민생과 경제를 방치하는 거대 양당을 인내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만 왜 예외인가'라고 물으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는 다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의 민주정 국가로서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국사를 다루는 헌법기관이기에 소환제 도입은 그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지적은 매우 타당한 측면이 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그렇지만 국회를 여느냐, 마느냐가 의회정치의 중심의제가 되어 있는 코미디 같은 풍경을 보면 소환제 도입을 요구하는 민의만 탓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도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주에는 국회 문을 열겠다"며 민주당과 한국당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바른미래당이 중간당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이며 중재의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늦어도 다음 주에는 국회가 열려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민심에 부합하는 정책 경쟁으로 불꽃을 튀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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