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유한 가족 통해 본 인간의 위선…영화 '해피엔드'

입력 2019-06-16 11:41  

프랑스 부유한 가족 통해 본 인간의 위선…영화 '해피엔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는 스마트폰 촬영 영상으로 시작한다.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씻고, 양치질하고, 빗질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은 13살 난 딸 에브. 딸은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일상을 생중계하듯 누군가에 전달하며, 그런 엄마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해피엔드'는 첫 장면처럼 관객과 거리를 두고 관조적 시선을 유지한다.
감정의 개입이 없기에 MSG가 안 들어간 음식처럼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한발 떨어져서 인생을 바라볼 때 참모습이 드러나고, 조미료를 치지 않을 때 식재료 고유의 식감과 맛이 더 살아나는 법.
영화의 건조한 시선과 거리감은 등장인물에 더 집중하게 하고, 그들의 본모습을 엿보게 만든다.

부족할 것 없이 보이는 프랑스 부르주아 집안 이야기다. 소녀 에브는 친엄마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결국 쓰러지자 재혼한 아버지 토머스 로랑 집에서 함께 산다.
외과 의사인 토마스는 프랑스 칼레 지역에 있는 부르주아 '로랑' 가문 일원.
집안 기둥이자 최고령인 조르즈를 비롯해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맏딸 앤, 앤의 아들이자 하나뿐인 후계자 피에르가 로랑 가문의 구성원이다.
에브는 고상하게만 보였던 가족들의 비밀을 하나씩 눈치챈다. 심지어 그 소녀조차 말 못 할 엄청난 비밀을 지녔다.
가족들은 서로 걱정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내달린다. 행복한 결말을 위해 자살 시도, 살인, 불륜, 일탈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재한 이중성과 위선은 일상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앤(이자벨 위페르 분)은 집에서 키우던 대형견이 가사도우미의 딸을 물자 쫓아와서는 "심각한 상처도 아닌데…"라며 짜증을 내고, 초콜릿 한 상자를 건네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제목 '해피엔드'는 행복한 결말의 반어법이자, 행복이 끝났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하얀리본'(2009), '아무르'(2012)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받은 오스트리아 출신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2012년 선보인 '아무르' 뒷이야기를 '해피엔드'에 담았다.
'아무르'에서 사지가 마비된 아내를 간호하며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던 주인공 조르즈는 '해피엔드' 속 조르즈가 돼 손녀 에브에게 자신이 간호하던 아내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비밀을 들려준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과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로랑 가문이 추진하던 공사장 사고 장면은 CCTV 화면으로 보여준다.
자살 시도에 실패한 뒤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지나던 조르즈가 흑인 난민 청년들에게 뭔가 부탁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대화는 자동차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피에르가 사고 피해자를 찾아가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도 먼 거리에서 잡을 뿐이다.
이런 거리감은 비극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게 만들면서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는 스마트폰, SNS 등이 바꿔 놓은 인간관계와 소통의 변화도 담는다.
토머스는 내연녀와 인터넷 채팅으로 진한 대화와 사랑 고백을 주고받고, 에바는 타인의 죽음을 앞둔 상황 앞에서 스마트폰 영상 버튼을 누른다.
하네케 감독은 제작 노트에서 "잘못된 일을 하고 교회에 가서 고해성사한 것처럼, 요즘은 소셜 미디어로 고백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형태의 종교 같다"고 말했다.
난민 문제, 계급 및 빈부 격차 등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배경인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는 유럽의 대표적인 난민촌이 있는 지역.
하네케는 "타인에 대한 경시를 이야기하려 칼레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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