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시간, 정성이 빚은 그림…안종대 "대상 아닌 실상 보라"

입력 2019-06-20 17:17  

자연과 시간, 정성이 빚은 그림…안종대 "대상 아닌 실상 보라"
색지·광목천 등 오랫동안 자연에 노출하는 '실상' 작업 이어와
한국·프랑스 오가며 작업…개인전 가나아트센터서 개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00∼2019' '1996∼2019' '2006∼2019'…….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걸린 안종대(62) 작품들 제작연도다. 통상 개인전이 전시 개최년도 혹은 그 전해 완성한 '따끈따끈한' 작품들로 채워지는 점과 다르다.
작가는 작업실 지붕이나 마당에 광목천, 색지 등을 늘어놓은 뒤 10년, 20년씩 기다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햇볕과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색깔은 바래고, 얼룩이 생기고, 섬유는 닳는다. 깨진 그릇 조각을 올려놓거나, 나무를 괴거나, 집게를 꽂아둔 부분만 원래 빛깔과 모습을 간직할 뿐이다. 이러한 작업을 모은 이번 개인전 제목은 프랑스어로 시간을 뜻하는 '르 탕'(Le Temps).
작가는 24살 때인 1981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88년 추상화들을 모아 파리 유진 에페메르 화랑에서 연 개인전은 대성공이었다. 작품은 언론 호평을 받았고 경매에서도 성과를 냈다.
"그런데 유진 에페메르 전시 직후 갑자기 허무해졌어요. 무엇인가를 그리고, 표현하고, 또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양미술 중심이라는 프랑스 화단조차 유행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풍경은 허무감을 더 커지게 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날이 수년간 이어졌다. 지금도 성경을 욀 정도이며, 그 외에도 불경, 도덕경 등 각종 경전도 파고들었다. 캔버스와 유화물감이라는 전통적인 작업 재료는 손에서 놓았다.
그러다 방치해둔 캔버스천에 남은 녹 자국, 물 자국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시간이나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는데, 정작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어요."
1990년대 초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실상'(實相) 작업은 이렇게 자연을 바탕 삼아, 시간의 힘을 빌린 채, 작가의 정성을 보태 완성한 것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실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어떠한 것이라면, 실상은 실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대상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실상은 그 너머로 존재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실상'을 아름다움을 통해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예술 역할이라는 것이 작가 생각이다. 그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에서 "부패나 노화, 변질, 탈색이 아닌 발효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했다.
작가는 전시장 1층에 놓인 종이 수백장을 가리켰다. "모두 다른 색깔 종이였는데 이제 모두 하얗게 변한 것이 보이죠. 생각해 보면 생김도, 성별도, 국적도 다른 사람들도 빛 아래서는 다 같아진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전시는 7월 14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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