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안 해 피해자 추가 폭행 방치"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해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조치를 하지 않아 추가 폭행을 방치한 의혹을 받은 경찰관들이 초동조치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청라지구대 소속 A(54) 경위 등 경찰관 5명은 지난달 17일 오전 5시 15분께 인천시 서구 한 주점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B(47·남)씨 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출동 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던 B씨는 상가건물 2층 주점 발코니 난간에 앉아 있었다. B씨 옆에는 C(39·여)씨와 그의 지인 D(48·남)씨가 있었다. C씨의 남편 E(46·남)씨도 현장 근처에 있었다.
이때 C씨는 돌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C씨는 "B씨가 자신의 멱살을 잡았다"는 취지로 주장을 이어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군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 경찰관들은 C씨의 일방적 주장을 한참 동안 들었다. 이들의 인적사항만 확인했을 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를 위협하고 때리기도 했으나 경찰관들은 이를 소극적으로 저지하기만 했고 후속 조치는 없었다.
경찰청이 전국 각 지구대와 파출소에 하달한 '사건별 초동조치 매뉴얼'에는 '현장에 출동하면 폭력 가담 인원을 분리하고 1차 우려자(가해자)를 제압한 뒤 현장 상황을 정리한다'고 돼 있으나 A 경위 등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C씨가 자신이 피해자라며 B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하자 현장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3분가량 자리까지 비켜줬다.
당시 한 경찰관이 다른 경찰관 4명을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현장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경찰관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B씨는 또다시 폭행을 당했다. 경찰이 비켜준 사이 E씨가 발로 1차례 B씨의 가슴 부위를 차는 장면도 CCTV에서 확인됐다. 피해자인 B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듯한 장면도 있다.
경찰은 A 경위 등이 명백히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고 이들의 징계수위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A 경위 등은 감찰 조사 과정에서 '억울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 처음 출동했을 때 B씨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으나 "괜찮다. 별 것 아니다"라고 해 가해자와 분리 등 별도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자리를 피해줄 때도 B씨에게 동의하는지를 여러 차례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A 경위 등은 진술했다.
또 B씨와 C씨 등이 '형'이나 '오빠' 등 친근한 호칭을 쓰고 같은 상가건물에서 장사하면서 서로가 잘 아는 사이라고 해 자리를 비켜주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A 경위 등이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을 했다며 억울해하고 있으나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업무를 소홀히 한 부분이 있어 징계할 수밖에 없다"며 "감찰 조사를 마치는 대로 징계위원회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이번 폭행 사건의 가해자인 E씨를 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C씨와 D씨는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E씨는 주먹과 발로 B씨의 얼굴과 가슴 부위 등을 수차례 때려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와 D씨는 B씨에게 욕설을 하거나 그를 향해 의자를 집어 던진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함께 술을 먹다가 상가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된 책임 주체를 놓고 시비가 붙은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당시 폭행으로 전치 4주의 병원 진단을 받았다며 경찰에 진단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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