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반출·폭격·해체…110년 유랑 끝내는 지광국사탑(종합)

입력 2019-06-21 14:43  

해외반출·폭격·해체…110년 유랑 끝내는 지광국사탑(종합)
1085년 원주 법천사에 건립된 승탑…1911년 일본인이 무단 반출
10차례 전전하며 수난…2016년부터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해체·보수
"국립박물관 관리권 지자체 이관도 의미"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문화재계 관심사 중 하나였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보존처리 후 행방이 '귀향'으로 결론 났다.
1000년 역사의 지광국사탑이 지난 110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며 겪은 수난은 바람 잘 날 없었던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국사'(國師) 법계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67) 사리를 모신 승탑(僧塔)이다. 함께 있던 탑비 비문에 따르면 탑은 1085년(선종 2년) 지금의 강원도 원주 부론면 법천사지에 조성됐다.
당대 승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9월 문화재 수탈에 혈안이 된 모리라는 이름의 일본인 손에 해체되면서 본격적인 수난의 길을 걸었다.
후지무라 도쿠이치(藤村德一)라는 일본인이 쓴 '현묘탑 강탈시말'에 따르면 탑은 그해 서울 명동 무라카미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일본인 사업가 와다 쓰네이치(和田常市)의 서울 중구 남창동 저택으로 이건됐다.
탑은 일본 오사카 남작 후지타 헤이타로(藤田平太郞)에게 다시 팔리면서 그해 5월 일본으로 반출됐다.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탑의 국유지 유출을 이유로 조선 반환을 명령하면서 그해 겨울 돌아왔지만, 원래 있던 법천사지가 아니라 경복궁에 놓였다.
조선물산공진회장 평면도(1916), 총독부박물관 배치도(1926), 총독부박물관 관람안내도(1936) 등을 보면 탑이 경복궁 안에서도 계속 이동했으며 해체된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때에는 폭격으로 상부 부재가 수십 조각이 날 정도로 파손됐다.
1957년 진행된 복원 작업은 치밀한 고증 없이, 파편을 모으고 모르타르를 곳곳에 바르는 데 그쳤다.
탑은 이후 1990년 경복궁의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뒤뜰로 이전해 2015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소장처이자 관리권자인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경복궁을 떠나 용산으로 이전했을 때도 탑은 홀로 경복궁에 남아야 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는 붕괴할 수 있는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탑은 정밀안전진단 등을 거쳐 2016년 5월부터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해체돼 수리받고 있다.
연구소는 해체 부재의 기록과 모르타르 제거, 파손된 부재 접착, 결실 부재의 재제작 등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절터에는 110년 전 탑과 이별한 탑비(국보 제59호)만 남았다. 탑과 탑비는 보호각과 전시관 중 보존 방식이 확정돼 설치된 이후에 재회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화재위원회 결정은 국립기관 소장 유물의 관리권이 연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원주시)로 이관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가 다수 있는 만큼, 지광국사탑 사례가 이들 문화재 관리권 이슈에도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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