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피란민 삶 오롯이…1,023일 피란수도 부산 둘러보기

입력 2019-06-25 11:39  

6·25 피란민 삶 오롯이…1,023일 피란수도 부산 둘러보기
전쟁으로 한꺼번에 인구 50만명 늘어…도시 기형 팽창
고단한 삶 현장 고스란히 남아…지금은 관광명소로 거듭나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부산은 6·25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50만명에 불과했던 부산 인구는 6·25전쟁으로 한순간에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전쟁이 끝난 뒤 공식 통계로 잡힌 1955년 기록을 보면 부산 인구는 104만9천명이다.
전쟁 기간에 무려 50만명이 넘는 인구가 한꺼번에 몰려들었으니 기존 도시구조로는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도시는 기형적으로 팽창했다.
하루 밤새 새로 생긴 판잣집은 산에서 산으로 올라갔고, 심지어 무덤 위에도 집을 지었다.
마을이 고지대에 형성됨에 따라 산복도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언덕 아래 위를 연결하는 가파른 계단도 대부분 이때 생겼다.

부산 원도심 곳곳에는 6·25전쟁이 남긴 아픈 역사와 피란민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현장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6·25 전쟁 69주년을 맞아 피란수도 부산을 둘러본다.
부산은 1950년 6·25전쟁 발발로 1천23일 동안 서울을 대신한 임시수도였다.
현 동아대 석당박물관이 임시중앙청사로 사용됐다.
임시중앙청사를 중심으로 경무대(현 임시수도기념관), 국립중앙관상대(현 부산기상관측소), 미국대사관 미국공보원(현 부산근대역사관) 등이 자리했다.
부산시는 이들 건물과 유엔묘지(현 유엔공원) 등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깡통시장, 국제시장, 헌책을 사고파는 인근 보수동책방골목도 6·25전쟁 때 형성됐다.
영화 '인정사정 불 것 없다' 주요 장면에서 나온 40계단은 피란민들의 힘든 삶이 스며있는 곳이다.
밤늦게 일을 마친 항만 부두 노동자들이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에 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다리로 40계단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이곳은 현재 문화테마거리로 조성돼 옛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관광객을 맞는다.

감천문화마을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해 만든 대표적인 피란민촌이다.
당시 삶과는 달리 지금은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한 해 방문객 수가 200만명을 넘는 부산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인근 서구 아미동 비석 마을은 공동묘지가 피란민 삶의 터전이 된 곳이다.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이 일본인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산 것이 지금의 비석마을을 만들었다.
부산시는 매년 피란수도 부산을 알리는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 축제를 열고 있다.
피란수도 관련 부산 원도심 골목 투어는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https://bto.or.kr/renewal/main/main.php)를 참고하면 된다.

ljm70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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