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젠더프리 캐스팅에 스태프 나이 위계 없애
이래은 연출 "묵가 사상 따른 작업 방향"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전쟁의 스케일에 매혹 당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연극 '묵적지수'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일상의 폭력이 난무하는 오늘날에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극에서 사상가 묵자(묵적)는 송나라를 침략하려는 초나라를 막기 위해 초나라 혜왕과 모의전쟁을 벌인다. 규칙은 실제 전쟁과 같게 하되 한 사람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초혜왕이 아끼는 궁녀 장질은 모의전에서 송나라 사람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지만, 이 모의전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묵적지수'는 2천500년 전 중국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무대 장치나 소품은 전무하고, 배우는 고대 중국 전통 의상이 아닌 운동화 차림으로 연기한다. 이들은 360도 원형 무대와 객석을 왔다갔다 하며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이래은 연출은 25일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이 공연은 대사가 들려야 하는 극이다. 연극이 영상 등 다른 매체와 다른 게 뭘까 생각했을 때 몸짓과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들과 몸을 확장해서 쓰는 방식을 찾고 연구했다"고 밝혔다.
배우들의 독특한 의상에 대해선 "전통과 현대를 섞어 그로 인해 감각이 어떻게 바뀔까를 고민했다. 재현보다는 낯선 감각의 전환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이뤄졌고, 스태프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 맡은 일을 했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휠체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무대 장치 반입구를 출입구로 사용했다.
이래은 연출은 "묵가는 나이, 성별,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며 "묵가의 사상을 다루는 데 있어 작업도 묵가의 방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은 항상 유희적으로 소비되곤 했는데 이 대본엔 전쟁을 직접 치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그 모습이 보이는 게 중요했다"며 "전쟁으로 땅의 경계가 바뀌거나 화려한 전투 장면이 있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프레스콜 도중 초혜왕 역 경지은 배우가 다쳐 전막 공연이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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