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참사 특조위 "의료·간병비 지원 현실 반영 못해"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안모(50)씨는 폐 이식 수술을 앞두고 라디오에 자신의 사연을 알렸고 일정 금액이 모금됐다.
안씨는 이 돈을 직접 받지 않고 방송국에서 병원으로 바로 보내달라 했고 병원 영수증을 근거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의료비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기술원은 의료비에서 성금은 공제하고 나머지만 지급했다.
안씨가 성금을 직접 받아 병원에 납부한 뒤 기술원에 의료비를 신청했다면 납부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병원에 바로 송금해 정부가 자의로 성금을 공제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김모(45)씨는 2019년 1월 14일 병원에서 건강모니터링 검사를 받았고 병원에서는 폐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김씨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여서 모니터링 검사 자료가 환경보건센터로 넘어갔고 환경보건센터에서는 김씨의 폐에 이상(폐암)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환경보건센터는 약 3개월이 지난 4월에야 김씨에게 폐에 이상이 있다고 통보했다.
환경보건센터에서는 모니터링 결과를 받은 후 피해자에게 결과를 통보하기까지 3개월이 걸리도록 설정돼 있어서다.
김씨는 통보를 받기 전에 개인적으로 병원을 찾아 추가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행히 폐암을 발견해 치료에 들어갔다. 늑장 통보로 하마터면 치료 시기를 놓칠 뻔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6일 서울 중구 포스트 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을 비롯해 '잘못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사례'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 임의로 삭감하는 의료비 ▲ 간병할 수 없는 간병비 지급 ▲ 현실적이지 못한 요양 생활수당 ▲ 치료를 위한 교통비 미지원 ▲ 개인 성금도 임의로 공제하는 정부 지원 ▲ 늑장 행정으로 중단된 요양급여 ▲ 기준과 원칙이 부족한 긴급지원 ▲ 피해자 불만 가중하는 건강 모니터링 ▲ 사망 후에야 도착한 판정결과 등 9가지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잘못된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모(58)씨는 중증 질환자로 2017년 5월부터 인공호흡기로 호흡하고 있다.
박씨는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어 소화 관련 약을 항상 먹고 합병증으로 피부과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치료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이 없다며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입원 치료 때도 의료진 처방에 따라 수액이나 영양제 주사 등을 처방 받았지만 역시 가습기 살균제와 직접 관련이 없다며 지급 거절돼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박씨는 또 매월 880시간(공휴일 및 야간 근무시간은 1.5배 가중치 적용) 간병이 필요하지만, 장애인 활동 보조 지원 290시간(국민연금 190시간 + 서울시 100시간)과 한국환경산업 기술원의 지원 115시간(지원 간병비를 장애인 활동 보조 시급으로 환산한 값)을 합쳐도 475시간이 모자라 가족이 교대로 간병하거나 자비로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박씨 남편이 간병을 전담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 박씨는 고도장해 판정을 받아 요양 생활수당 최고액인 약 99만원을 지원받지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회 위원장(상임위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청자 6천446명 중 정부 인정 피해자는 824명으로 약 12.8%에 불과하다"며 "정부 지원을 받은 사람들도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지원으로 고통받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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