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기 전에 사죄한다는 말, 듣고 싶습니다"

입력 2019-06-27 11:52  

"눈 감기 전에 사죄한다는 말, 듣고 싶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 양금덕 할머니, 미쓰비시중공업 주총일 도쿄서 시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사죄한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저는 이대로 눈물 흘리며 생을 마감해야 합니까. '아베'(일본 총리)가 아직도 사죄 안 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하루속히 잘못했다고 사죄하라고…."
27일 오전 9시 30분께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건물 앞.
일제 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노역에 시달렸던 양금덕(실제 나이 90세, 호적 나이 87세) 할머니가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 시작되는 미쓰비스중공업 정기 주총에 참석하는 주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절규였다.
당시의 노역에 대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작년 11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아낸 원고 5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양 할머니가 외친 것은 눈을 감기 전에 일본의 사죄를 꼭 듣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언론인 여러분들, 원고들에게 사죄하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양 할머니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의 맞불 시위로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한국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



양 할머니는 "(초등) 6학년 때 일본인 교장이 돈도 많이 벌게 해 준다고 해서 나고야(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가 1년 넘도록 열심히 일했다"며 "(그로부터) 73년이 지났어도 1원짜리 하나 못 받고, 이를 (일본 정부가) 인정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베가 저희한테, 한국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가슴에 손을 얹고 사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주총장 앞에서는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 지원 모임 등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을 이끌어온 한·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변호인단이 배상을 촉구하는 홍보전을 펼쳤다.
이들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2018년 11월 중의원에서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한 발언 내용을 적은 현수막을 펼쳐 들고 한국대법원이 개인청구권을 인정해 내린 배상 판결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피해 할머니들에게 1인당 1억~1억5천만원의 위자료 지급판결을 선고하면서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강점기에 야기된 문제에 대한 양국 간 청구권이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판결 수용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한·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정부 눈치를 보지 말고 자주적으로 피해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며 회사 측이 대화에 나서도록 주주들이 힘을 써 달라고 호소했다.
원고 측은 한국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후속 조치를 포괄적으로 논의하자고 지난 21일 미쓰비시 측에 요구했고, 내달 15일까지 이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을 경우 대법원판결 취지에 따라 이미 압류한 한국 내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의 현금화 등 후속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이날 일본 우익단체 관계자들은 '한국과 단교하라' 등 반한(反韓) 내용이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맞불 시위를 펼쳤다.
parks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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