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드릴 말씀 없다", 통일부 "대화 조속 재개 노력"
방한 비건 대표, 별다른 언급 없이 공항 떠나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정성조 기자 = 북한이 27일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겨냥하는 다소 공격적인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한미 양국은 '친서 외교'를 계기로 조성된 북미대화 재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는 듯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저런 말들로 북한을 자극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4개월 만에 찾아온 협상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날려버리기보다는, 조만간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율된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권정근 국장은 이날 오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문에서 미국을 향해 "말로는 조미(북미)대화를 운운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적대행위를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에는 북미대화 재개에 대해 "남조선(남한)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핀잔을 주고, "남조선 당국자들이 북남사이에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대남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초 북유럽 3국을 순방하면서 했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남조선 당국은 마치 우리 때문에 대화가 진척되지 못하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이날 '2019 한반도평화 심포지엄' 특별강연에서 권 국장의 담화문과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글들에 대해 "상당히 공세적"이라고 평가했지만, 한국 정부는 평가를 유보한 채 말을 아끼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미 대화의 여건이 굉장히 좋다고 했던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성명을 북한이 냈는데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별도로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권 국장의 담화 발표에도 "남북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 간 합의를 차질없이 이행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남북 및 북미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북한 외무성이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저격한 담화문을 발표한 이날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에 도착했다.
비건 대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났지만 관련 질문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는 '북측 인사를 만날 예정이냐', '최근에 북측과 접촉이 있었느냐' 등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번 담화문 발표는 북미 정상이 서로 만날 의지를 이미 확인한 이후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여 한미가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대화의 판을 깨려는 것이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한미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미국에는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오라고 주문하고, 한국에는 미국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라는 의미가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북한과 미국 정상 사이에서 실무접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니 한미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안을 만들어 제안하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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