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사와 선거구 획정 관련 공화·민주 양당에 희비 엇갈린 판결
시민권 여부 묻겠다던 트럼프정부에 제동, 민주 손들어줘…트럼프 "터무니없다"
게리멘더링은 "주에서 알아서 할 일"…30개주 의회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유리
(워싱턴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주영 옥철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중대 변수인 인구조사와 선거구 획정에 대해 공화·민주 양당에 희비가 엇갈린 판결을 각각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내년 인구조사 때 시민권 보유 여부를 질문 항목에 추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소송에서는 27일(현지시간)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인구조사 결과가 연방 하원의원 수와 선거구 조정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시민권 질문이 이민자들의 인구조사 참여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민주당 측 논리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셈이다.
연방대법원은 반면 이날 또 다른 판결에서는 공화당에 승리를 안겨줬다.
대법원은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으로 불리는 자의적 선거구 획정에 대해 주 입법체가 결정할 일이지 법원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 유리한 판결이다.
◇ 대법 "시민권 문제 제기는 인구조사 응답률 낮출 위험 있다"
AP와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정부의 '시민권 질문' 인구조사 방침에 반발해 18개 주(州)가 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5명이 원고 측을 지지했으며 4명은 정부 편에 섰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주장은 불충분했다"며 시민권 질문이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의 투표권 보장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시민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인구조사 응답률을 낮출 위험이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이번 법적 다툼은 상무부가 내년 인구조사 때 미국 시민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을 포함하겠다고 작년 3월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상무부는 "투표법의 원활한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법무부의 요청을 수용해 195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이 질문을 부활했지만 일부 주들이 반발해 소송을 냈다.
이들 주는 이 질문이 포함되면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들이 답변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해 인구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은 약 200만 가구 이상, 약 650만명 이상의 인구가 조사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 인구조사는 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10년 주기로 이뤄지며 인구조사일은 4월 1일이다. 법무부는 인구조사를 토대로 연방 하원의원 수와 하원 선거구를 조정한다.
이와 관련, 민주당 단체장이 이끄는 지역과 이민자 단체 등은 정부 방침이 수백만 명의 히스패닉 및 이민자의 선거 참여를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선고결과를 즉각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우리 정부와, 실제로 국가가, 매우 비용이 들고 상세하고 중요한 인구조사에서 시민권에 대한 기본적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이 이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인구조사를 연기할 수 있는지 변호사들에게 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위대한 국가로서, 누군가가 시민인지 아닌지에 관해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는가. 오직 미국에서만"이라고 덧붙였다.
◇ 게리맨더링 판결에선 보수 우위 대법원이 공화당 손들어줘
연방대법원이 이날 선거와 관련해 내린 또 하나의 쟁점 판결은 게리맨더링을 주 의회에 맡겨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엇다.
대법원은 "주 입법체가 그들의 지역구에서 (선거구를 가르는) 선을 긋는다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도, 그것은 법원이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CNN은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게리맨더링에 사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만 보면 양당에 균등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향후 10년간 공화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날 소송에서 문제가 된 주는 민주당이 게리맨더링을 한 메릴랜드와 공화당이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한 노스캐롤라이나이다.
그러나 이 판단을 확장해보면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 유리하다. 더구나 공화당은 22개 주의 경우 상하 양원을 장악한 것은 물론 주 정부까지 손에 쥐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이 의회와 주 정부를 모두 장악한 주는 14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공화당이 장악한 주는 텍사스처럼 광활한 곳이 많아 게리맨더링을 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CNN은 "텍사스를 예로 들면 인구증가로 내년에 3개 선거구가 증설될 것으로 보이는데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작년 중간선거에서 당선됐고 주 의회 상하 양원도 공화당이 굳건히 지키고 있어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나면 민주당이 더 불리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내년 선거와 2022년 중간선거가 있지만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구가 한 번 획정되고 나면 2030년까지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화당으로서는 '10년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한 셈이 된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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