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붕괴30년 독일은 지금] ⑥정범구 "獨교훈은 화해·교류"

입력 2019-07-02 08:01   수정 2019-07-02 12:34

[장벽붕괴30년 독일은 지금] ⑥정범구 "獨교훈은 화해·교류"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통일토대로서 긴장완화·전쟁위협 제거 중요"



(베를린=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정범구 주 독일 대사는 "긴장완화와 화해에 이은 교류협력이 축적되지 않고는 통일의 조건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범구 대사는 지난달 19일 베를린 한국대사관에서 이뤄진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올해 30주년이 되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교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정 대사는 한반도와 독일의 상황이 다름을 전제하면서도, 독일 통일 전에 있었던 '교류협력을 통한 상호 이해 확대'가 남북한에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대사는 "(동서냉전 종식으로 이어진 개혁개방을 추진한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우연'이지만 그런 상황이 왔을 때 통일을 하려면 '토대'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며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전쟁의 위협 제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간담회 주요 내용.
--현지에서 보기에 독일 통일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감지되나?
▲대사관이 최근 훔볼트 대학과 함께 심포지엄을 했다. 주제가 '장벽은 과연 사라졌는가'였다. 독일인들이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
동서독 통일의 다음 과제는 내부 통합문제다. 그것이 지난 30년간의 과제였다. 독일통합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나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게 보편적 평가다.
그러나 구 동독지역의 임금과 소득 수준이 구 서독지역에 비해 아직 떨어진다. 아직도 대기업들은 서독 지역에 몰려있고 동독 지역은 중소기업 외에 대기업이나 산업시설이 적다.
이른바 심리적 장벽도 있다. 눈에 보이는 장벽은 사라졌지만 머릿속 장벽은 더 높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것이 독일 극우 정당 강세에서 나타난다. 독일 대안당(AfD·정식명칭:독일을 위한 대안)이 16개 연방 주의회에 다 들어와 있는데 전례없는 일이다.
배경은 구 동독 지역 사람들의 민주주의 훈련이 상대적으로 덜 돼 있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대안당이 구 동독 지역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는 배경은
▲대안당 지지세력이 동독출신 저학력·저소득 노령층이라고 대체로 생각하는데 실제 분석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그 사람 주장에 따르면 지지자는 재산, 연령, 학력별로 고루 분포돼 있다. 또 현 메르켈 정권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쪽이 지지하고 있다. 동독에서 지지가 높은 것도 난민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분단시절 서독에는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으나 동독은 베트남, 쿠바 출신자 외에는 외국인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2015년 메르켈이 난민 100만명을 받아들이면서 각 지자체로 난민들을 배정했다. 구 동독 지역엔 500명 사는 마을에 난민 1천명이 배정되기도 했고, 급격한 변화도 있었다.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한 불안감이 대안당 지지의 요인 중 하나다.
특히 구 동독지역 60대 이상은 동독사회에서 적응에 필요한 교육을 다 받아서 동독에서 기반을 잡고 있다가 통일되면서 자신들의 근거가 송두리째 다 넘어갔다. 통일후 30년간 간신히 적응해서 집도 장만하고 했는데 난민들이 갑자기 들어오면서 난민 지원수준이 기초보장 수준이 되니까 동독지역 주민들이 특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극우정당 득세가 우리 교민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없나
▲우리 유학생 사이트를 보면 일상에서 당하는 인종차별 및 인종혐오 발언 피해에 대해 글을 많이 올리고 있다. 독일 기업 호른바흐사의 동양 여성 비하 광고는 한국 유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해 내리게 했다. 그런 외국인 혐오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을 나도 느낄 수 있다.
--독일 통일 과정은 한반도에 어떤 교훈을 주고 있나
▲독일과 한반도는 조건이 다르다. 고르바초프가 없었더라면 독일 통일은 지금까지도 어려웠을 것이다. 동서독 관계가 남북관계와 같지 않다.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띈다. 동서독간에는 전쟁은 겪지 않았고, 군사적으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간의 대결이었기에 다르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볼 수 있는 것은 긴장완화와 화해, 그에 이은 교류협력이 축적되지 않고는 통일 조건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고르비가 나와서 통일까지 갔지만 브란트 서독 총리 등장 이후 추진한 화해정책의 축적없인 고르비가 있었어도 통일의 조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고르비의 등장은 역사의 우연이지만 그런 상황이 왔을때 통일을 하려면 토대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한반도에서도 긴장완화와 전쟁 위협 제거가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서독은 정권교체에도 큰 소동없이 대 동독 정책을 유지했고 통일까지 갔다. 독일 정치로부터 배울 것이 있을까
▲대 동독 화해의 깃발을 처음 든 건 브란트의 사민당이었지만 독일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보수 기민당의 콜 총리다. 기민당과 보수당 같은 경우는 급속히 동독과 가까워지고 동독에 과도한 지원을 하면 동독 전체주의 정권 유지를 돕는 것이라고 했고 동독 인권문제에 대한 지적없이 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단, 근본적으로 대립을 완화하고 교류를 확대하는데 대해서는 속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보수정당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콜 총리때 보수당 정권에서 통일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평화저널리즘 연수 과정의 하나로 취재·작성되었습니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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