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희 대표 "한국영화계와 4반세기…눈 깜짝할 새 지나갔죠"

입력 2019-06-30 09:00  

채윤희 대표 "한국영화계와 4반세기…눈 깜짝할 새 지나갔죠"
영화 홍보마케팅 업계 '대모'…올댓시네마 창립 25주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1998년 6월. 영화 '쉬리'(강제규 감독) 제작발표회가 서울 액션 스쿨에서 열렸다. 당시 정두홍 무술 감독 지도 아래 한석규 등 배우들이 총기 액션·와이어 액션 등을 시연, 눈길을 끌었다. '쉬리'는 촬영 과정에서도 화제를 몰고 다녔다. 여의도에서 길을 막고 경찰특공대와 북한 특수공작원 간 총격전 장면을 찍을 때는 공포탄 500발을 사용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놀라 경찰과 언론에 확인 전화를 거는 소동도 벌어졌다.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영화 '쉬리'를 홍보·마케팅하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방송사 '9시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이슈가 됐다"면서 "단관 개봉 시절 582만명이 들었는데, 현재로 치면 1천500만명 정도가 든 셈"이라고 말했다. '쉬리'의 상업적 성공은 올댓시네마가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준 토대가 됐다.
국내 최초 영화 홍보 전문 마케팅 회사인 올댓시네마가 다음 달 1일 창립 25주년을 맞는다. 영화가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포장하고, 널리 알리는 게 마케터가 하는 일.

올댓시네마는 영화 마케팅이 신문과 잡지 광고에 주로 의존하던 1994년 7월 문을 열었다. 부침이 심하고 척박한 충무로에서 한 회사를 25년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채 대표는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흘렀다"면서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채 대표는 한국영화 100년 역사 가운데 4반세기를 마케터로 활동해온 만큼, 한국영화 홍보마케팅 업계 대모로 꼽힌다. 그는 1983년부터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했다. 그러다 한 대기업 의뢰로 올댓시네마를 차렸다. 1990년대 초중반은 삼성과 대우, SK 등 대기업이 앞다퉈 영화 산업에 뛰어들던 시기다. 극장도 멀티플렉스로 바뀌면서 영화 산업 규모도 커졌고, 한해 개봉 편수도 늘었다.
1994년 '컬러 오브 나이트'를 시작으로 '쉬리', '매트릭스'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 약 500편이 올댓시네마를 거쳐 갔다. 채 대표는 "늘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게 이 일의 매력"이라고 했다.

성공의 짜릿함도 맛봤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경험도 많았다. 채 대표는 1997년 뤼크 베송 감독이 영화 '제5원소' 홍보차 한국을 찾았을 때를 첫손에 꼽았다. 뤼크 베송은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영화 일부가 무단 삭제된 사실을 안 뒤 그 길로 나가 극장에서 확인하고 하루 만에 돌아가 버렸다.
채 대표는 "그 시절만 해도 수입사들이 영화를 편집하는 게 관행이었다"면서 "뤼크 베송이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각종 인터뷰가 다 취소되는 등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고 떠올렸다. 그 일로 한국영화계 후진성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5원소'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채 대표는 "25년간 어렵고 힘든 적도 많았다"면서 "그래도 한국영화 산업이 풍성해지는 시절에 들어와서 재미있게 일했고, 25년간 직원들 월급을 하루도 밀린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이 녹록지 않다. 홍보마케팅 파급력이 예전만 못하다. 수많은 매체와 플랫폼이 생겨난 데다, 1인 미디어가 쏟아지는 시대여서다. 누구나 극장 문을 나설 때 휴대전화를 켜고 영화평을 올리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정보가 마케팅에 이용될 때는 가차 없이 비판과 지적이 날아든다.
채 대표는 "아무리 포장해도 영화의 본질은 바꿀 수 없다. 과거에는 일주일 정도는 관객을 속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없다"며 잘 포장을 하되, 정직한 마케팅을 강조했다.

영화계에 오랫동안 몸담았으니 한 번쯤 영화 제작을 꿈꿀 법도 한데, 채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심재명(명필름 대표), 김미희(스튜디오 드림캡쳐) 대표 등 다른 여성 제작자들이 대박을 터뜨릴 때 사실 부럽기도 했다"면서도 "영화는 잘 될 때는 모르지만, 안될 때는 엄청난 무게감을 견뎌야 한다. 누군가 '영화 제작은 독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저는 새가슴이라 못한다"며 웃었다.
채 대표는 20년째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을 이끌고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해마다 여는 '여성영화인축제'도 올해 20회를 맞는다. 채 대표는 "요즈음 몇 년간 한국 상업영화는 비슷한 내용의 멀티캐스팅 영화가 주로 나왔지만, 작년부터 여성주의 시각의 작품도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기대했다.
채 대표는 요즘 '조용한 퇴장'을 구상 중이다. 얼마 전에는 10년 넘게 터 잡았던 종로구 사간동 사무실을 뒤로하고 마포구로 이사했다. 직원들을 위해 사무실 분위기를 바꿔본 것이다.
"사람들이 저더러 '한결같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았다는 게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자리를 꾸준히 지킨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변화무쌍하게 살지 못한 게 조금 아쉽죠. 이제는 어떻게 하면 영화계에서 조용히 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은퇴라기보다 후배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고 싶어요."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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