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서 김정은 안내로 '깜짝 월경'…카터·클린턴은 퇴임 후 방북
현직 美대통령 DMZ行은 레이건 이후 5번째…평화 방점찍은 대북 메시지 차별
군용 항공재킷 입었던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는 정장 차림으로 DMZ 시찰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북미 외교사의 새 장을 열었다.
이날 예고대로 비무장지대(DMZ)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김 위원장의 안내로 MDL을 넘어 북녘 땅을 밟은 것이다.
북측에서 김 위원장과 함께 사진을 찍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함께 다시 남측으로 넘어와 대기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회동이라는 역사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전부터 '북한 땅을 밟을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나는 그럴 것"이라면서 "그렇게 하는 데 대해서 매우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간 현직 미 대통령이 됐다.
1994년 6월을 시작으로 세 차례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2009년 8월 평양을 찾아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석방을 끌어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모두 퇴임 이후 방북이었다.
앞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중이던 지난 2000년 북한과의 수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11월 방북을 추진했으나, 수교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는 첫 현직 미 대통령이 될 기회를 놓쳤다.
이날 '깜짝 월경'의 배경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은 현직 미 정상으로는 다섯 번째다. 그는 첫 방한 기간인 지난 2017년 11월 8일 DMZ에 들어가려다 악천후 탓에 헬기 기수를 돌려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수' 끝에 DMZ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이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미 정상들이 빠짐없이 남북 분단의 최전선을 직접 찾는 기록도 이어지게 됐다.
미군 전문지 '성조'(Stars and Stripes) 등에 따르면 최초로 DMZ를 방문한 현직 미 대통령은 1983년 11월 13일 레이건이었다.
레이건은 경계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북한 쪽을 응시한 뒤 미군 병사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에 있다"며 "여러분은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믿는 모든 것에 적대적인 체제의 군대와 자유 세계 사이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그는 DMZ 방문을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로 회고했다고 성조지는 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1993년 7월 11일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DMZ 내 최북단 경계초소인 오울렛 초소(OP)를 시찰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직접 걸었다.
클린턴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최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한 나라가 될 것"이라며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자신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지 한 달여 만인 2002년 2월 20일 DMZ를 찾았다.
당시 부시는 오울렛 초소에 올라 쌍안경으로 북한을 살펴보다가 1976년 도끼 만행 사건에 사용된 도끼가 마주 보이는 북측 '평화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는 미군 장교의 설명에 "그들이 악이라는 내 생각은 놀랄만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후 DMZ 방문 소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가장 최근 DMZ에 발을 들인 미국 정상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3개월 지난 2012년 3월 25일 방한한 오바마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항공 재킷 차림으로 오울렛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장면을 연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당시 오바마는 미군 병사들에게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북한만큼 자유와 번영의 견지에서 분명하고 극명하게 대조되는 곳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임 미 대통령들이 대부분 북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DMZ를 찾아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발신한 반면, 작년부터 직접 비핵화 대화를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발언은 최근의 달라진 북미 간 상황을 반영, 평화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이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울렛 초소를 둘러보다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싱가포르에서의 우리 만남 전에는 여기 이곳에서 큰 충돌, 어마어마한 충돌이 있었다"라며 "우리의 첫 만남 이후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금은 극히 평화롭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라면서 "아무것도 달성되지 않았다고 계속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다시 말한다. 너무 많은 것이 성취됐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군용 항공점퍼를 걸치고 DMZ를 찾았던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정장 차림으로 비무장지대를 시찰한 첫 미국 정상이 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DMZ를 찾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USFK'(주한미군의 약자)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강인한 의지를 간접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 데탕트(긴장완화)에 앞장선 트럼프 대통령은 DMZ행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약속한 만큼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군용 의상을 전혀 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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