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갈등에 무역문제 결부…'자유무역' 강조하다 '수출 규제'
니혼게이자이 "통상규칙 자의적 운용 '우려'…韓기업 脫일본 부작용 커"
美의 화웨이 배제·중일 센카쿠 갈등 닮은꼴…선거 앞 '韓 때리기' 관측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1일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에 사실상의 경제보복을 단행한 것은 과거사 갈등에 무역문제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일본의 기존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보복 조치는 타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통상규칙을 자의적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의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한 우대 조치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직접 관련이 없는 징용 문제와 무역 문제를 결부시켰다는 점에서 그동안 강조해왔던 '자유무역'의 원칙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마침 지난달 말 자국에서 개최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 바 있어 불과 며칠 만에 스스로 말을 뒤집는 이율배반적인 조처를 한 게 됐다.
아베 총리는 G20 회의에서는 다른 19개국을 대표해 공동성명에 들어갈 '자유무역' 관련 문구를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는 역할을 했다.
성명서에는 절충 끝에 "자유롭고 공평하며 무차별적이고 투명성이 있는 무역과 투자 환경"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해서는 아베 총리가 조정 능력을 발휘해 이런 문구를 제안했다는 식의 자찬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중장기적으로 한국기업의 '탈(脫)일본'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의 조치는 통상규칙을 자의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일본제 반도체 재료가 안정적으로 조달되지 못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기업들의 일본 탈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또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를 '극약'이라고 표현하며, 세계적으로 거래망을 넓히고 있는 삼성이 소재를 수급할 대체 국가를 확보하려 할 것인 만큼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이번 보복은 무역 마찰이 심해지자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을 배제한 미국의 조치와 '안보상의 우려'를 이유를 들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일본은 미국의 조치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작 한국을 상대로 비슷한 명분을 든 조치를 단행하는 겉과 속이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2010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갈등 당시 중국이 자국산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중단한 것과도 유사점이 많다.
당시 일본 제조사들은 중국 정부의 조치를 계기로 희토류를 대체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거나 새 조달처를 찾으며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
일본 정부는 얼마 전에도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조처를 한 바 있어, 자국 이익을 위해 무리하게 통상과 검역 조처를 한다는 비판이 국제사회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한국의 후쿠시마(福島) 인근산 수산물 수입금지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패한 뒤 지난달 초 넙치(광어)와 조개류 등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검역 조치를 강화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 조처를 한 시점을 둘러싸고는 오는 4일 고시해 21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정권과 자민당이 극우 유권자층의 결집을 노리려 한 것이라는 의심이 진하다.
껄끄러운 G20 정상회의를 끝낸 뒤 선거 고시를 앞두고 '한국 때리기'에 나서 한국에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극우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이 읽힌다.
日,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 對韓 수출규제 발표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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