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제도 허점도 지적…"구조기술사 배치됐다면 사고 전 조치했을 것"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서울 잠원동에서 4일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한 사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허술한 안전관리가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4일 오후 2시 23분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지상 5층·지하 1층짜리 건물이 붕괴하면서 인근을 지나던 차량 3대가 건물 외벽에 깔려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승용차 1대에 타고 있던 여성 1명이 숨지고 동승자 남성은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이 결혼을 앞둔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이번 사고를 두고 건축 전문가들은 5일 예기치 않게 건물이 무너졌다고 해도 건물 잔해가 공사장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조치가 돼 있었다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를 내놨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혹여 철거 계획이나 작업 중 발생한 문제로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건물 잔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차량 등을 덮친 것은 안전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해당 건물엔 얇은 가림막만 설치돼있었고 안전 지지대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작업자 안전확보와 더불어 건물 잔해가 공사장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버팀보를 충분히 설치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이러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결국 시간과 비용의 문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필요한 안전조치가 생략되면서 피해가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어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징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후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선 제도의 허점을 정확히 찾아내 보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2017년 1월에는 종로구 낙원동에서 철거 중인 숙박업소 건물이 무너져 매몰자 2명이 숨졌고, 같은 해 4월에는 강남구 역삼동 5층 건물 철거현장에서 바닥이 내려앉아 작업자 2명이 매몰됐다가 구조됐다. 작년 3월에는 천호동 철거 공사장에서 가림막이 무너져 행인 1명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지난해 9월 무너진 서울 상도유치원의 경우 사고 발생 5개월 전부터 붕괴 위험 지적이 나왔지만 결국 사고를 막지 못했다. 당시 의견서를 통해 위험을 경고했던 이수곤 전 교수는 "이러한 사고들은 결국 제도와 시스템의 허점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잠원동 사고는 결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며 "관리·감독 기관들이 서로 안전관리 책임을 미루거나, 충분한 안전조치를 의무화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붕괴 위험에 대비해 공사장 주위에 버팀보나 안전 지지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제도와 이러한 조치들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감독할 전문 책임기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전문지식을 가진 구조 기술사들이 계획 단계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배치돼 작업 중 발생하는 변수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의무화할 제도 마련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잠원동 사고가 나기 전에 구조 기술사가 현장에 배치됐더라면 붕괴 조짐을 보고 외벽 구조물을 강화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며 "관련 제도를 손봐야 앞으로의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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