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직위를 거래 대상으로…능력주의 공무원 제도 정면 위배"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최순실씨의 한때 측근이었던 고영태씨에게 관세청 인사 청탁과 함께 뒷돈을 건넨 공무원이 해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장낙원 부장판사)는 이모 전 인천세관 사무관이 관세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 취소 소송에서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류상영(전 더블루K 부장)씨를 통해 2015년 12월 고씨를 만난 뒤 고씨에게서 인천세관장으로 임명할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얘길 들었다.
이씨는 자신과 가까운 상관인 김모씨를 추천했고 김씨는 이듬해 1월 인천세관장에 임명됐다.
고씨는 이후 이씨를 만나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된다"면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 말을 김모 인천세관장에게 전달한 뒤 그에게서 200만원을 받아다 고씨에게 건넸다.
이씨는 그해 5월 고씨에게서 다시 관세청장으로 임명할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평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천홍욱 전 관세청 차장을 추천했다가 인사가 그대로 이뤄지는 걸 봤다.
이씨는 그 후 고씨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2천만원을 건네며 자신의 승진 인사도 챙겨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징계위원회는 이씨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그를 해임했다. 돈을 받은 고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올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형을 확정받았다.
이씨는 "고씨 요구에 따라 관세청 내부 인사들에 대한 세평을 알려줬을 뿐이고 고씨에게 인사 청탁을 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고씨에게 준 돈도 "그의 협박에 이기지 못해 건넨 것이고 승진 얘기도 고씨 기분을 맞춰주려고 한 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는 류상영을 통해 고영태가 일부 권력층과 가까운 사이임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고,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이 인천세관장과 관세청장에 임명되는 것까지 확인했다"며 이씨가 고씨에게 건넨 2천200만원은 인사 청탁 대가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로 인한 국가적·사회적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해임도 적정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공무원이 아니지만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인사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금전을 제공했다"며 "공무원의 직위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외관을 만들어 행정조직의 청렴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깨뜨렸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의 행위로 인해 관세청을 포함한 행정조직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자긍심과 사기도 크게 저하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이 능력주의의 기틀 위에 세운 직업공무원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위를 해 엄히 징계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