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 아이가 청량리역 철로 위에서 발견된다. 기관사가 기차를 급정거해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아이는 약 1년간 기관사의 집에서 살다가 고아원을 거쳐 프랑스로 입양된다.
35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나나'에게는 낳아준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남은 것은 기관사 집에서 불렸던 이름뿐이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조해진의 신작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민음사)은 나나가 자신의 기원을 찾아 한국행을 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프랑스에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는 나나는 기관사의 집에서는 '문주'였다.
문주라는 이름도 고아원에 들어가면서 소멸했다. 나나는 서류에도 남지 않은 문주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문주라는 이름에 집착했다. 철로에서 발견되기 전의 기억이 전무한 그에게 문주라는 이름은 시원(始原)이었기 때문이다.
나나는 "문주로 살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감각과 기억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라며 "문주의 의미를 알아야 나의 역사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나의 한국행은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한국 대학생 서영의 이메일에서 시작된다.
이미 과거 한국에서 생모와 기관사를 찾는 데 실패하고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나나지만, 왠지 서영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다.
서영과 함께 문주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나나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둘씩 알아가고, 또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작품에서 역사적 폭력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 주목해온 조해진은 이번 소설에는 해외 입양인과 기지촌 여성의 삶을 다룬다.
나나는 생모가 자신을 철로 위에 버렸다고 믿었다. 철로에 버려지고, 철로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순간은 그 어떤 상상보다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조해진은 그렇게 가장 밑바닥의 감정을 파고들면서, 한편으로는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나나는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암울하고 서늘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나나가 조금씩 뿌리 깊은 오해와 증오를 해소하면서 소설은 조금씩 온도를 높인다.
한국행 제안을 받아들일 당시 나나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다.
나나는 뱃속의 생명에게 '우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쩌면 하나의 온전한 우주가 되기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작가는 이 소설이 '세상 모든 생명에 바치는 헌사'라고 했다.
조해진은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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