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경찰서 복귀하던 강력계 형사, 불심검문으로 돈다발 확인해 긴급체포
동남아 출신 16세 전달책, 입국 3일만에 8천500만원 가로챈 혐의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지난달 26일 오후 1시께. 크로스백과 백팩을 앞뒤로 멘 한 외국인 남성이 서울 방배경찰서 앞 길가를 따라 조급하게 걸어가면서 택시를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마침 점심식사를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하던 방배경찰서 강력 2팀 형사들은 남성의 모습을 수상하게 여기고 뒤를 밟았다.
택시를 잡느라 형사들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남성은 길가에 구겨진 종이 하나를 버렸다. 뒤따라오던 형사들이 확인해보니 한 시중은행 상호가 적힌 빈 봉투였다.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전달책일 수 있다고 의심한 형사들은 남성을 불러세워 경찰 신분을 밝히고 불심검문했다.
형사들이 '백'(가방), '오픈'(열다) 등 간단한 영어 단어와 몸동작으로 가방을 열라고 하자 남성은 머뭇거리면서 형사들의 요구에 따랐다. 남성이 멘 크로스백 안에서는 5만원권 지폐 400장이 나왔고, 휴대전화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주소로 추정되는 지도와 위치 등이 표시돼 있었다.
형사들은 남성이 보이스피싱 전달책임을 확신하고 긴급체포했다.
방배경찰서는 긴급체포된 동남아 국가 출신 16세 A군을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4일 국내에 입국한 뒤 3일 동안 서울과 인천, 부천 등 수도권 일대에서 6회에 걸쳐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약 8천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 가운데 200여만원을 자신의 몫으로 챙기고, 나머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자녀를 납치했다고 피해자를 속이고, 자녀를 풀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의 현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썼다.
체포되기 직전 A씨는 방배경찰서 인근에서 또 다른 피해자로부터 2천만원을 받아 오는 길이었다. A씨가 버린 은행 봉투는 피해자가 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담은 봉투였다.
경찰은 공조수사를 벌여 A씨의 추가 혐의 5건을 확인했다.
A씨는 체포 직전 벌인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여죄를 묻는 말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동갑내기 지인과 함께 입국했다고 밝혔지만, 동행인의 신원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계 형사들의 직감과 적극적 수사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며 "당시 검거되지 않았다면 추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A씨 외에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총책 등 조직원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k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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